코엑스 몰 입구. 담배 피우는 사람들이 점령해버렸다. 속으로 들어가려면 자욱한 담배연기를 뚫고 가야 한다. 용산전자상가의 한 건물 계단실. 젊은 남자 직원들이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다. ‘금연’이라는 팻말에 반항이라도 하듯 그 아래에는 재떨이가 당당하게 놓여있다. 실내 금연이 보편화하면서 나타난 기현상들이다. 강제 금연은 늘고 있지만 사람들은 실내외 모두에서 오히려 담배 연기에 더 노출되고 있다. 왜 그럴까.
흡연이 실외로 나앉으면서 길거리가 담배 연기에 뒤덮였다. 가장 심각한 곳은 건물 입구다. 아예 ‘흡연구역’이라는 팻말까지 붙이며 가장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출입구를 흡연구역으로 지정해버렸다. 건물 출입구가 담배 연기로 오염되고 있다. 건물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강제로 담배 연기를 맡게 돼있다. 지금 도처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등을 기다려보자. 10여 m되는 폭에 매번 담배를 물고 있는사람이 두세 명은 꼭 있다. 담배 하나가 주변에 10명 이상에 피해를 끼친다. 신호등을 기다리는 동안 꼼짝없이 맡아야 한다. 사람이 조금이라도 붐비는 길거리도 마찬가지이다. 아무 곳에나 서서 한 바퀴 돌아보자. 보행 중 흡연인 사람이 한 번에 한두 명은 꼭 눈에 들어온다. 그 사람이랑 가는 방향이 같기라도 하면 여간 곤욕이 아니다.
담배 연기는 건물 출입구부터 시작해서 길거리 어디에나 있다. 흡연자 입장에서는 공기 중에 날아가버리니 무슨 상관이냐고 생각하겠지만 비흡연자 입장은 다르다. 담배 한 개비에서 나오는 미세먼지는 승용차 10대분에 해당된다. 맨 공기도 엄연한 공간이며 권리이다. 하물며 건물 출입구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출입구 앞 흡연은 건물에서 근무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흡연 이외의 추가 피해를 준다. 출입구는 건물의 얼굴이자 가장 중요한 공간 가운데 하나다. 출입구 흡연은 여러 면에서 건물의 첫인상을 나쁘게 만든다. 출입구 앞이 항상 담배 연기로 자욱한 건물이 있다고 해보자. 그 건물이 좋아 보일 리 없다. 젊은 사람들이 여럿모여서 뻑뻑 담배를 빨아대고 있다. 날씨라도 조금 추울라치면 주머니에 손을 넣고 덜덜 떨거나 건들거리면서 피운다. 건물 구성원들의 건강도나 젊음도를 의심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이런 현상은 시내 오피스 빌딩, 상가, 대학, 공공건물 등 여러 곳에서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이런 회사를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은 나쁜 이미지를 갖기 쉽다. 이것은 돌고 돌아 흡연자에게도 피해로 돌아온다.
실내 상황도 비슷하다. 계단실이나 화장실 같은 은밀한 곳에서의 몰래 흡연은 줄지 않고 있다. 아예 화장실에 재떨이를 놓은 곳도 아직 많다. 이 두 곳은 흡연의 간접피해가 더 크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실은 금연이 더 엄격하게 시행되어야 하는 곳이다. 그러나 은밀하고 구석지다는 이유만으로 실내흡연의 마지막 보루가 되고 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로서는 절박한몸부림이라 하겠지만 담배를 안 피우는 사람한테는 오기나 발악 같은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환기가 잘 안되고 좁은 공간인 화장실은 금연이 더 강력하게 시행되어야 하는 곳이다. 화장실에 숨어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의 심리도 문제다. 단순히 공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가벼운 폐쇄성 질환의 성격을 갖는다. 이것은 흡연 자체가 어렸을 때 모성의 사랑이 결핍된 사람에게서 많이 나타난다는 연구보고와도 일치한다.
조금 봐줄 수 있는 것이 배변 습관이다. 담배를 피워야만 똥 눌 수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의사들은 담배하고 똥은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하지만 문제는 흡연 당사자들 스스로의 믿음이다. 집 화장실에서 흡연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이들은 공공 화장실을 이용한다. 출근길 지하철 화장실이 좋은 예이다. 아니면 좀 참고 회사까지 와서 해결한다.계단실도 해롭기는 마찬가지이다. 계단실은 굴뚝처럼 생겨서 담배연기가 전 층에 걸쳐 퍼진다. 요즘 전기 절약이나 운동 등 여러 이유로 가까운 층은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으로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계단을 오르는 사람은 호흡이 가빠지고 이때 맡는 담배연기는 치명적이다.
흡연자들은 자신들의 흡연권이 갈수록 제한된다며 불만이지만 비흡연자 입장에서는 그 반대이다. 아직도 성인 흡연인구가 반을 넘기 때문에 비흡연자들은 다수의 횡포가 곳곳에서 버젓이 행해진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패스트푸드점을 제외한모든 식당에서 흡연권이 보장되고 있다. 비흡연자들은 밖에서 밥을 먹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원치 않는 담배 연기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반면 흡연자의 입장에서는 일반 사무실에서 금연이 철저히 지켜지기 때문에 자신들이 입는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불만들이다.
담배를 피우는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담배를안 피우는 사람이 옆에서 입는 피해에 대해서 한 번이라도 생각해본 적이 있느냐고. 그 친구대답이 요즘 금연 움직임 때문에 담배 피우는 사람이 받는 스트레스와 피해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했다. 자신들은 해로운 물질을 그만큼 들이쉬는데 그 정도 갖고 뭘 그러느냐고도 했다. 물귀신 작전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담배 피우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이와 비슷한 생각들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결국 흡연권과 비흡연권 가운데 어느 것이 우선하느냐의 문제이다. 흡연권과 비흡연권 사이의 공방이 실내외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미국은 금연운동의 선두주자답게 일찍부터 비흡연권에 우선권을 두어 비흡연자를 철저히 보호해왔다. 흡연 인구가 30%대 밖에 되지 않는 소수인 상황도 한 몫 한다. 일본에서도 도쿄의 한 구에서 길거리 흡연마저 금지하는 등 이와 비슷한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미국도 길거리 흡연을 금지하고 있는주나 도시가 점점 늘고 있다.
반면 프랑스에서는 아직도 흡연권이 우선인 사회 분위기가 유지되고 있다. 흡연자의 즐거움을 위해 비흡연자들이 참으라는 식이다. 담배를 피움으로써 얻을 수 있는 행복을 다른 사람이 막을 수 없다는 논리이다. 인간의 감각적즐거움을 존중하면서 이것을 개성이나 인권의한 형태로 보려는 프랑스의 오랜 전통의 산물이다. 우리랑 음주, 흡연 문화가 비슷한 아일랜드에서는 술집에서의 흡연을 전면 금지했다. 처음에는 반발이 심했지만 그 뒤 1년 만에 흡연율이 10% 이상 떨어졌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프랑스의 중간 정도인 것 같다. 우리나라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물론 금연을 더욱 철저히 시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흡연자를 위한 별도의 공간도 마련해주어야 한다. 실내에서는 흡연실을 별도로 둔 다음 화장실과 계단실 흡연을 철저히 단속해야 한다. 길거리도 마찬가지이다. 앞으로는 길거리 흡연도 강력하게 단속되어야 하지만 흡연자들을 위한 큰 깡통이나 작은 컨테이너 같은 것을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많은 회사들이 최근 들어 흡연실을 없애는 추세이다. 이것은 두 가지로 위험하다. 한 가지는 흡연자의 인권이 무시될 소지이다. 흡연자들과 상의 한 마디 없이 흡연실을 없애는 경우가 많다. 이런 태도는 지양되어야 한다. 흡연자들은 불쌍한 중독자일지언정 범죄자는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한 가지는 비흡연자들이 겪는 피해가 되레 증가한다는 사실이다. 성매매처럼 막기만 한다고 될 일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흡연실을 그냥 두거나 더 만들어주는 것이 비흡연자들에게는 더 고마운 일일지도 모른다.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
※사진은 필자가 직접 찍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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