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의 측정단위 ‘배럴’은 어원이 액체를 담는 나무통으로, 용량은 159ℓ다. 달러 환율, 미국 FRB 금리, 다우존스 지수 등과 더불어 배럴 당 기준유가는 세계를 움직이는 주요 경제지표로 군림한다. 1년 전만 해도 30달러 선이었던 유가는 지금 50달러 선에서 굳건히 버티고 있다. 이래도 우리 일상생활이 괜찮을 것인가.
‘1,499원.’ 엊그제 주유소에 걸린 표지판에서 본 휘발유 가격이다. 엄청 올랐다. 승용차가 필수품이 된 세상이지만 보통 사람들로선 이런 기름값 급등추세를 견디기 쉽지 않다. 승용차는 주말용으로 세워두고 전철이나 버스를 이용할 사람이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철도공사의 유전사업 의혹 때문에 요즘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유가로 인해 정치적 부담을 느끼는 것 같지는 않다. 천정부지로 휘발유 값이 뛰는데도, 그의 인기가 오르고 있으니 말이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대통령이라고 별 뾰족한 수가 있겠느냐"며 국민들이 너그럽게 이해하는 덕분이리라.
그런데 미국에선 휘발유 값 때문에 부시 대통령의 인기가 최악이다. ℓ당 600원 정도로 우리와 비교하면 아직 헐값이지만 작년에 비하면 엄청나게 올랐다. 이라크전쟁이 석유자원 확보 때문이라는 말도 나오듯 미국인들은 기름 값에 매우 민감하다. 아마 그들의 마음엔 세계 최강국 대통령이 에너지자원 하나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느냐는 실망감이 있을 법하다.
부시 대통령이 귀한 손님을 특별히 접대하는 방식은 텍사스 크로포드에 있는 그의 목장으로 초청하는 것이다. 그는 25일 사우디아라비아의 압둘라 왕세자를 이곳으로 불러들였다. 부시는 약속시간보다 30분이나 늦게 도착한 압둘라의 손을 꼭 잡고 보랏빛 수레국화가 흐드러지게 핀 목장 길을 걸었다. 3시간 동안 회동하며 부시가 가장 공들여 말한 내용은 석유생산량을 늘려 가격을 안정시켜달라는 요청이었다.
부시 대통령은 환경론자들의 끈질긴 반대에도 불구하고 알래스카 야생동물 보호구역에서의 석유시추 허용 법안을 의회에서 밀어부치고 있다. 또 1979년 펜실베이니아주 스리마일 원자력발전소 방사능 누출사고 이후 완전히 손을 뗀 원전 건설을 다시 추진하는 계획을 공표했다. 그는 최근 어떤 모임에서 "내 힘으로 할 수만 있다면, 나도 유가를 낮추고 싶다"고 말했다. 에너지 자원, 특히 휘발유 값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를 잘 드러내고 있다.
에너지 문제에 대응하는 부시 대통령의 분주한 움직임은 그냥 흘려버릴 일화가 아니다. 에너지 수급상황이 매우 심상찮게 돌아간다는 징후다. 미국은 세계 최대 석유수입국이지만 수입선은 캐나다 및 멕시코 28%, 중동 26%, 남미 21%, 아프리카 17%, 기타 8%로, 중동의존도를 크게 줄였다. 그러나 국제유가 안정 측면에서는 별 의미가 없다.
고속 경제성장에 접어든 중국과 인도의 에너지소비 증가로 세계 석유시장은 몹시 불안정한 상태다. 수요의 40%와 70%를 수입에 의존하는 두 나라는 최근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선언하며 에너지분야 협력을 다짐했다. 게다가 중국은 아프리카 남미에까지 공세적 석유외교를 펼치고 있다. 두 나라가 세계 석유자원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석유탐사 전문가들은 수년 내에 석유생산이 정점을 치고 하강하면 세계적 오일쇼크가 재연될 것이라고 불길한 예언을 서슴지 않는다. 당대 최고의 석유문제 전문가로 통하는 다니엘 여르긴은 "이렇게 빡빡한 시장분위기라면 유가는 65~8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가는 오사마 빈 라덴이 주장하는 144달러를 향해 달리는 것일까.
생각하기도 싫은 예측이고, 숫자들이다. ‘내일 일어날 일을 말하면 귀신이 웃는다’는 말이 있지만, 우리 서민의 생활에 엄청난 타격을 주는 일인 만큼 미리 각오하고 대비하는 게 최선이다. 휘발유 값을 1,499원 이하로 묶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기 때문에.
김수종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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