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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더미’ 강원 영동 바람탓만 하기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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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더미’ 강원 영동 바람탓만 하기엔…

입력
2005.04.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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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왜 이런 겁니까. 살풀이라도 해야 할까요."

강원 영동지역 주민들이 해마다 되풀이되는 대형 재앙에 넋을 잃었다. 수마에 할퀸 자국이 채 아물기도 전에 화마가 덮치는 일이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영동지역에서 유일하게 대형 산불이 비켜갔던 양양군마저 5일에 이어 28일 2차례 대형 산불 피해를 당하자 주민들은 실의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 절망감 확산 = 29일 새벽 양양군 현남면 임호정리 마을회관과 차 안에서 잠깐 눈을 붙인 게 전부라는 손명희(42·여)씨는 아침 일찍 전날 불로 다 타버린 집을 둘러보고 울음을 터뜨렸다. 손씨는 "식구들 몸 안 다친 것은 다행이지만 집도 절도 없이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며 잿더미가 된 집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 지역 주민들은 울창한 녹음과 푸른 바다로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양양송이축제 등 각종 행사를 개최해 수입을 유지했으나 이제 어렵게 됐다. 산림 복구에는 최소한 20~30년이 소요되고, 그동안 산사태, 하천 범람, 제방 붕괴, 해양 오염 등의 2차 피해는 지속된다.

◆ 지방자치단체 산불 대비 소홀 = 영동지역의 산불은 푄현상에 의한 강풍이 원인으로 지적된다. 또 수해는 기상 이변에다 급경사라는 지형적 특성이 원인이다. 그러나 주민들은 가장 큰 책임이 지자체에 있다고 본다.

지방자치제가 시작된 1995년 이후 산불 발생은 급격히 늘었다. 전국의 산불 발생 건수는 90년 71건, 91년 139건, 92년 180건, 93년 278건이었다. 그러나 민선단체장 선거 전 해인 94년 433건으로 늘었다. 1기 민선단체장들이 대부분 관선 출신이었다는 점에서 단체장들의 선거 준비와 출마로 정신적으로 해이해지면서 산불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이어 단체장이 취임한 95년에 630건, 2000년 729건, 2004년 544건이 발생했다. 올해는 28일까지 374건이나 된다.

주민들은 "관선단체장 시절에는 산불 피해 면적에 따라 책임을 져야 했기 때문에 봄 가을이면 단체장들이 산에서 살다시피 했다"며 "민선 이후 단체장들이 가시적인 대형사업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막상 주민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돌아가는 산불에 대한 대비책이 소홀해졌다"고 지적했다.

강원도는 IMF 이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산림직 공무원을 400여명에서 290여명으로 줄였다. 규모가 축소됐던 다른 일반직 공무원은 이후 복귀시켰으나 줄어든 산림직 담당은 복귀되지 않았다. 또 강원도내 18개 시·군에서 산불대책 등을 맡은 산림과는 구조조정 당시 농정산림과로 통합됐다. 지난해부터 인제, 홍천군 등 7개 시·군은 별도로 산림과를 다시 창설했으나 이번에 산불이 난 양양과 고성 등 나머지 11개 시·군은 산불 예방과 대책 등을 전담할 부서조차 없는 형편이다.

◆ 발화 원인 책임소재 논란 = 산불 발화 원인을 놓고 책임소재 논란도 일고 있다. 지난해 3월 발생한 속초 청대산 산불 원인을 둘러싼 이재민과 한국전력공사 측의 공방은 2년째 계속되고 있다. 당시 수사기관은 고압선이 끊어지면서 생긴 ‘아크 현상’이 원인이라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한전 측에 책임을 물을만한 뚜렷한 단서가 없어 이재민들은 지원도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28일 산불의 경우 경찰은 목격자 함모(72)씨로부터 "전신주 위에 소나무가 걸쳐져 있는 상태로 불길이 치솟았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또 1차 현장조사에서 2만2,900V 고압선로의 피복이 벗겨진 채 불탄 흔적이 남아 있고 주변 나뭇가지에서도 불에 탄 흔적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일부에서는 한전에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그러나 한전 관계자는 "고압선로 등 한전 시설물이 정상적인 상황에서 강풍 등 불가항력의 상황에 의해 나무가 넘어지면서 전선에 마찰을 일으켜 산불이 난 것으로 판단된다"며 "한전도 산불의 피해자"라고 말했다.

양양=곽영승기자 yskwak@hk.co.kr

■ 영동 산불 용의자 긴급체포

충북 영동경찰서는 29일 신라시대 고찰인 영국사(寧國寺)를 잿더미로 만들 뻔한 영동 산불을 낸 용의자로 박모(52)씨를 긴급체포, 산림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경찰에 따르면 박씨는 27일 오전 11시30분께 영동군 양산면 가선리 야산에 지은 자신의 움막 앞에서 나뭇잎 등으로 불을 피워 밥을 지어먹은 뒤 불씨를 방치해 불을 낸 혐의다. 경찰은 "박씨가 사업에 잇따라 실패한 뒤 주민등록이 말소된 상태로 이곳에 들어와 15년째 움막 생활을 해왔다"고 밝혔다.

한편 강원 양양과 충북 영동 등 전국 20개 지역에서 28일 발생한 산불로 29일까지 산림 199㏊와 가옥 14채가 불에 타고 14가구 36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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