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과 백인의 사랑이 결혼으로 결실을 맺는 것은 최근 수십 년간 미국 인종 문제가 얼마나 진보했는지 보여주는 척도다. 2000년 조사에서 기혼 남녀 중 흑인 남성-백인 여성 부부가 6%, 흑인 여성-백인 남성 부부가 3%를 차지했다. 미국인 대다수가 흑백 결혼에 긍정적인 추세다. 다른 인종과 데이트해 본 경험이 있다고 답한 사람이 40%나 된다는 조사도 나왔다.
그러나 아직도 인종 문제에 폐쇄적인 분야가 있다. 영화다. 흑인 남자배우 덴젤 워싱턴과 금발의 백인 여배우 리즈 위더스푼이 뜨거운 사랑에 빠지는 할리우드 영화가 나올 수 있을까? 흑인 남성과 백인 여성의 사랑은 지금껏 스크린의 금기다. 오늘날 미국인은 피부색에 관계없이 연애하지만 영화는 현실을 반영하는 데 자신 없어 하는 분위기다.
1967년 금기를 잠깐 넘어섰다. 흑인 남자배우 시드니 포이티어가 주연한 ‘초대받지 않은 손님’은 흑인 의사와 백인 처녀가 양가 부모한테 결혼 허락을 받는 과정을 그린 것이었다. 2005년 ‘초대받지 않은 손님’ 리메이크작이 나왔는데 이 작품은 미국 영화가 거의 진보하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비교적 익숙하고 전형적인 ‘백인 남성-흑인 여성’의 사랑으로 바꾼 것이다. 그것은 미국 노예제도를 연상시킨다. 농장주와 노예 여성의 관계 말이다. 최근 영화 ‘몬스터 볼’에서 백인 남자배우 빌리 손튼이 흑인 여배우 할 베리를 안을 때 관객은 혐오가 아니라 부러움을 느낀다고 제작자들은 생각한 것 같다.
현실은 빠르게 변화해 왔다. 58년 조사에서 백인의 96%가 흑인-백인의 결혼을 반대했다. 그 해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7세의 퍼지 심슨과 9세의 하노버 톰슨 등 흑인 소년 두 명이 강간 혐의로 체포됐다. 한 백인 소녀가 하노버에게 키스한 뒤였다. 퍼지는 12년 형을, 하노버는 14년 형을 선고받았다. 그랬던 사회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해 67년을 전환점으로 인종간 이성교제를 받아들이게 됐다. 당시 국무장관이었던 딘 러스크는 그 해 딸을 흑인 남성과 결혼시켰고, 시사주간 타임은 이 부부를 표지모델로 실었다. 영화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나왔으며, 대법원이 인종간 결혼금지법을 폐지한 해이기도 하다.
사회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영화와 TV는 인종 문제를 다루는 데 민감했다. 57년 ABC 방송 ‘앨런 프리드 쇼’에서 흑인 가수 프랭키 리먼이 백인 여성과 춤을 췄는데, 방송사는 즉시 프로그램을 폐지했다. 흑인 남성-백인 여성의 로맨스를 묘사한 영화는 아주 적다. 웨슬리 스나입스와 나스타샤 킨스키 주연 ‘원 나잇 스탠드’ 정도가 떠오른다. 최신작 ‘히치’에서 흑인 남자 배우 윌 스미스는 라틴계 여성과 사랑에 빠지는데 이런 경우는 받아들일 만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대중문화 산업은 오늘날 사회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한다. 2006년 개봉하는 ‘엠마의 전쟁’에서 가야 이 명제가 영화화하는 것을 보게 될 듯 싶다. 백인 여성 니콜 키드먼이 흑인 남성과의 결혼을 두고 고민하는 얘기다. 이제야 셰익스피어의 ‘오델로’를 따라잡으려 하는 것이다. 할리우드가 인습을 타파하는 첫 걸음을 내디뎠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브라운 대(對) 교육이사회 사건’ 판결로 미국 학교에서 인종차별이 폐지된 지 반세기가 지났다. 최근 스크린에서 사랑의 장벽이 무너지는 것은 교육 제도보다 훨씬 혁신적이다. 강제적이 아니라 자발적인 변화라는 점에서 그렇다.
니컬러스 크리스토프 NY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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