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는 전쟁 종식 30년을 맞은 베트남과 한국의 과거와 현재를 조명한 현지 르포 ‘베트남을 가다’를 연재했다. 예전에 보 구엔 지압으로 부르던 대불·대미 항전의 전설적 영웅 보 응우옌 잡(Vo Nguyen Giap) 장군 인터뷰를 곁들인 시리즈는 두 나라의 활발한 교류 상황과 더불어 우리가 그들에게 남긴 깊은 상흔도 잘 살폈다. 경제 문화적 한류 열풍이 부는 베트남 사회 한쪽에 "한국군은 무섭고 잔인했다"고 몸서리치는 기억이 아직 남아 있음을 알리고 있다.
■ 공산주의 저지를 명분 삼은 침략 전쟁에 10년 가까이 33만명을 파병한 우리가 얼마나 많은 베트남인을 죽였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전체 희생자 몇 백만명 가운데 적어도 몇 만명은 우리가 넋을 어루만지고 사죄해야 할 몫이다. 그러나 시리즈는 베트남인들의 너그러운 화해 메시지에 주목한다. 아흔이 넘은 잡 장군은 "과거를 지울 수 없지만 미래를 향해 함께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군에 희생된 주민 위령탑이 선 곳에서 어느 베트남 노병은 "한국군은 미국의 용병일 뿐이다. 외세 침탈 역사 속에서 화해에 익숙한 베트남인들은 모두를 용서했다"고 말한다.
■ 우리의 가해 역사를 되돌아본 젊은 기자들이 피해자 베트남인들의 화해 의지를 강조하는 관행을 떨치지 못한 것은 아쉽다. 그 화해 의지가 당장 교류 협력이 절실해서가 아니라 오랜 지혜에서 우러난 것일지라도, 우리 자신의 과거와 화해하는 빌미로 여기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그 시절 우리 처지에 파병은 불가피했고 부국강병에 이바지한 사실은 베트남인들 앞에 변명거리가 될 수 없다. 이치가 이런데도 우리 사회가 진정 사죄하는 마음을 얼마나 갖는지 늘 의문스럽다.
■ 우리의 이런 모습은 우리 역사의 가해자 일본이 뉘우치지 않는다고 성토하는 또 다른 모습과 대비된다. 흔히 일본과 비교하는 독일이 어두운 과거를 딛고 거듭난 것은 국민과 정치지도자들이 서로 양심을 일깨우며 안팎으로 도덕적 처신을 계속한 덕분이다. 그 독일인들은 피에 젖은 국익을 다투는 해외 전쟁에 선뜻 끼어드는 우리를 도덕적으로 보지 않는다. 일본의 사악함을 욕한다고 우리의 도덕성이 높아지진 않는다. 불행한 과거와 화해하려면 피해와 가해의 역사를 함께 살피는 양심을 지녀야 한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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