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허리 베어 내고픈 동짓달 기나긴 밤, 홀로 앉은 방에 매화향 가득하고 달빛은 출렁 채워지는데 깊은 마음을 구비구비 펴고픈 정든 임 이승으로 떠나보냈으니 하릴 없이 지난날의 정리만을 떠올릴 밖에…. 빈한함을 평생의 벗으로 삼았고 강직함이 대나무를 닮아 죽기로써 임금에게 상소를 올리기를 마다 않던 조선의 선비들에게도 숫접은 구석은 있었다. 세사에 어두워 돈 벌 줄을 몰랐고, 사색붕당에 휘말려 툭하면 귀양살이에 나섰던 그들은 가문의 대소사며 잡다한 허드렛일을 도맡으면서 낭군이 보여주는 한치의 나태도 용납하지 않았던 지어미를 잃고서 비틀거렸다.
풍파와 속진(俗塵)을 더불어 헤쳐왔던 조강지처의 죽음 앞에서 홀아비가 된 선비들은 울부짖었다. "당신이 가버린 뒤로 내 어찌 차마 안방에 다시 들어갈 수 있겠소"(성백 홍석주)라고 장탄식을 늘어놓던 양반 중에는 노론 영수였던 화양동주(華陽洞主) 송시열이 있었고 남인 최후의 거목인 번암(樊巖) 채제공이 있었다.
‘빈방에 달빛 들면’은 그렇게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선비들이 ‘오호통재((嗚呼痛哉)라’를 연발하며 지었던 마흔 아홉 편의 제문을 한글로 옮겨 펴낸 책이다.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수원 국역실 전문위원 출신인 유미림 강여진 하승현씨는 절절한 망부가(望婦歌)를 당대 문장가들의 문집에서 골라냈다.
"아! 자네와 함께 사는 동안, 나는 자네를 집안의 좋은 친구로 여겼네. 내가 잘못을 할 때면 자네가 충고해주었고, 일만 생기면 나는 꼭 자네와 의논했으니 ‘지기’(知己)라 하는 친구들도 자네보다 낫지 않았네."(자용 정홍명) "나도 늙고 병들었으니 산들 얼마나 더 살겠소. 살아서는 갇혀 있다지만 죽어서까지 매여 있지는 않을 테니, 죽어서는 당신과 한 무덤에 들어갈 거요. 지금은 이승과 저승으로 떨어져 있다 해도 영혼은 꿈 속에서나마 통할 것이오."(사숙 황신) "날마다 온갖 약을 먹여 보아도 아무 효험이 없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초혼을 하게 되었으니, 다 내 잘못이오. 진작 이럴 줄 알았더라면 어찌 하루라도 병든 당신을 버려두고 대궐에서 오래도록 벼슬살이 하는 영화를 달가워 했겠소."(자빈 이관명)
삶의 반려자를 먼저 떠나보낸 딸깍발이들은 글자 한자 한자에 애달픔을 녹였다. 조선이니 유교니 하는 말을 완고하고 억압적인 가부장제와 동일시 하기 십상인 우리에게 색다른 글들이 아닐 수 없다. 비록 공맹(孔孟)의 이데올로기인 삼강오륜과 칠거지악이라는 족쇄에 묶여 그림자로 살아야 했고, 삯바느질을 하고 패물을 팔아 살림을 챙겨야 하는 고단한 책무가 조선의 아녀자들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만큼의 지위가 그들에게는 뒤따랐다. 낭군에게 깍듯한 존댓말을 들었고, 바깥양반의 벼슬에 따라 정경부인 같은 품계를 받았다.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 등이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한국이 상대적으로 여성을 존중하는 뿌리 깊은 전통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그래서다.
이 책은 아울러 하루 평균 381쌍이 이혼하고 결혼한지 20년을 넘게 산 부부의 ‘황혼이혼’이 전체 이혼율의 18.3%에 달하는 각박한 오늘날 부부사이의 애틋한 정을 새삼 일깨워주는 각성제 노릇도 톡톡이 한다. 퇴계 이황의 문인으로 선조 때 관찰사를 지낸 호원 권문해는 아내에게 바치는 제문에 이렇게 적고 있다. ‘부부란 하늘과 땅이 자리를 잡고부터 있어왔기에 오륜의 으뜸이라오. 또한 생명의 시초이고 만복의 근원이니 인륜의 극치라 하겠소.’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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