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가 추진중인 형사소송법 개정이 사실상 검찰의 존재 기반을 흔들 것이라는 공감대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검찰 조직 전체가 심상찮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번 사안은 공직부패수사처 신설이나 수사권 조정 등을 놓고 여권이나 경찰 등과 빚고 있는 갈등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수뇌부부터 일선 검사까지 조직적 대응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자칫 ‘검란(檢亂)’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 반발 확산 = 27일 수도권 긴급 검사장 회의에서 이 문제가 공론화 된 직후부터 터져 나오기 시작한 일선 검사들의 반발은 28일 전국으로 확산됐다. 이날 검사들의 의견교환 창구인 검찰 내부통신망은 법원에 대한 반감, 조직적 대응을 요청하는 격문 등으로 가득 찼다.
천안지청 김종민 부장검사는 "어느 기관으로부터도 통제받지 않는 법원이 이제 검찰을 고사시켜 형사사법 기능을 통제하겠다는 목표 달성을 눈 앞에 두고 있다"고 법원을 성토했다. 대검찰청 이완규 검사가 "실질적 수사권을 판사가 가져가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주장하자 이를 지지하는 검사들의 댓글이 잇따랐다.
서울중앙지검 김윤상 검사는 "이제 검찰청별로 평검사 회의를 개최해야 할 시점"이라며 "‘정말 아니다’는 생각이 든다면 사직하는 것이 도리"라고 사생결단을 촉구했다. "공판중심주의는 우리나라에서 급조된 표어이거나 캠페인성 구호"(법무부 국제법무과 최용훈 검사)라거나 "피고인은 변호사 옆에서 희희낙락하고 불쌍한 피해자만 들들 볶이게 될 것"(대검찰청 윤장석 검사)이라는 우려도 뒤따랐다.
◆ 왜 반발하나 = 사개추위에서 추진중인 안이 시행되면 검사는 법정에서 피고인과 대등한 입장에서 재판에 임하게 된다. 검찰에서 조사한 내용을 피고인이나 참고인이 거부하면 일체 증거로 쓸 수 없다.
검사는 피고인을 직접 신문할 수도 없다. 범죄를 입증하려면 검사나 검찰수사관이 직접 증언대에 서서 증언해야 한다. 피고인의 신청에 의해 변호인이 피고인을 신문할 때만 검사는 반대신문을 할 수 있다.
검사들은 이렇게 되면 검찰을 비롯한 수사기관의 범죄수사 기능은 크게 약해질 수 밖에 없다고 우려한다. 검찰 수사의 결과물인 조서를 증거로 안 쓰면 수사는 결국 요식행위로 전락하고, 판사가 사실상 수사도 하는 ‘원님 재판’이 재현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특히 사건 관련자의 진술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정치인이나 공무원의 뇌물 사건의 경우 수사를 사실상 포기할 수 밖에 없다고 검찰은 주장한다.
사개추위가 모델로 삼고 있는 미국의 경우 유죄를 인정하는 조건으로 형을 감해주는 플리바게닝이나 사법방해죄 등의 제도를 두고 있어 수사여건 자체가 우리와 다르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이처럼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제도를 바꾸면서 충분한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밀어붙일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거듭 우려를 나타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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