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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시장 균형자론을 까보니

입력
2005.04.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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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독일 순방 중 지침을 내려주기 전까지 소위 이 나라 최고 경제정책 결정권자들이 외국자본의 역할과 공과에 대해 보여준 인식은 한마디로 요령부득(要領不得)이었다. "비정상적인 시장교란 행위를 통해 부당이득을 취한 자본은 국내외 구분없이 엄격하게 규제할 것" "국내외 자본을 막론하고 음성적 세금탈루가 있으면 차별없이 원칙을 세워 척결할 것" "합법적이라면 이익이 많다고 비판해서는 안되며 잘못이 있다면 국내외 구분없이 처벌하는 게 당연" "(은행 소유지분 제한 등) 국내기업이 외국기업에 비해 역차별 받고 있다"는 등의 말을 듣다 보면 이들이 무슨 투쟁전선에 나선 듯한 느낌마저 갖게 했다.

수출 및 수입 총액이 국내총생산(GDP)의 70%를 넘고 증시의 외국인 지분율이 42%에 이르며 동북아 금융허브를 주창하는 국가의 고위 관료들이 한두개의 유력 외국언론이나 몇몇 투기성 펀드가 우리의 시장정책을 악의적으로 왜곡한다고 우루루 칼을 빼든 것은 분명 볼썽사납다. 그렇다고 교과서적 표현 이상의 특별한 내용을 담은 것도 아니다. 외환위기 이후 자본시장을 전면 개방하는 과정에서 느슨해진 감독규정을 엄격하고 공정하게 적용하겠다는 메시지는 전달됐는지 몰라도 대부분의 외국 투자자들이 한국의 자본시장을 오해할 구석만 여기저기 남긴 셈이다.

노 대통령이 "국내 일부에서 (외국자본의 이익에 대해) 국부유출이란 말을 쓰는데 앞으로 정부는 그런 용어를 쓰지 않을 것"이라며 "정상적인 활동을 통한 영업이익은 그것이 많건 적건 권리를 인정해줘야 한다"고 선을 긋자 외국자본 논란이 쑥 들어간 것도 모양이 별로다.

급기야 정부는 시장질서 확립을 위한 ‘균형자’ 역할을 자처하며 ▦지속적 규제완화로 공정경쟁 기반을 보장하고 ▦국내외 자본을 차별없이 동등하게 대우하며 ▦위법·부당 행위에 대해 국적을 불문하고 엄정하게 처리하는 외국자본 감독방향 3대원칙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런 정도의 방향을 잡는데 그토록 먼 길을 돌아오며 온갖 요란을 떤 것은 참으로 촌스럽다.

투기든 투자든 자본, 특히 시공간을 넘나드는 외국자본의 속성은 기본적으로 약탈적이다. 기업가치 제고형 운운 하지만 수익의 실현시기나 방법만 다를 뿐이어서 자본을 선악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은 어리석고 때론 위험하다. 보다 큰 리스크를 떠안거나 남들보다 기회를 빨리 포착한 자본에 보다 큰 보상이 돌아가는 것은 전혀 시비 걸 일이 아니다. 자본시장 활성화나 감독정책은 조용하면서도 실효적으로 게임의 룰이 관철되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는 얘기다.

정부가 외국자본 폐해 논란을 생산적으로 이끌지 못한 것은 일차적으로 투기자본의 천문학적인 이익실현과 세금회피에 대한 감성적 비난 여론과 이에 휘둘린 관료들의 조급증 때문이다. 그러나 한꺼풀 더 벗겨보면 경제단체나 재벌들이 상대적 역차별을 부각시키면서 외국자본의 경영권 위협을 과장해 문제의 본질을 희석시킨 측면도 크다. 왜곡된 소유·지배 괴리도와 기업지배구조의 취약성으로 인해 M&A의 표적이 되거나 투기자본의 돈놀이 행각에 질질 끌려다니면서도 오로지 외국자본의 ‘나쁜 습성’탓으로 돌리는 구태가 재연된 것이다.

전경련은 최근 한술 더 떠 ‘외국계 투기자본의 무차별적인 기업사냥과 차익실현을 억제하는 법적 제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미국식 기업결합제한법이나 이익반환법 도입 등도 건의해 언뜻 보면 애국적 충정마저 엿보이지만 자신들의 책임이나 역할에 대한 성찰은 어디에도 없다. 민원 해결의 적기를 만났다고 그저 떼를 쓰는 격이다.

물론 어설픈 세계주의나 섣부른 민족주의는 모두 해롭다. 법과 제도가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라가면서도 그 나라 고유의 정치사회적 문화를 담아내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세계 10위의 경제력을 가진 국가인데도 정책·감독 당국이나 대기업의 의식은 여전히 시류편향적이고 일관성이 없다. 시장기강이 서지 않으면 시장친화가 아닌 시장야합 정책만 횡행할 것이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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