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에서는 묶고, 다른 한쪽에서는 풀고.’
금융회사 채권 추심을 둘러싼 정부 정책이 엇가고 있다. 불법 채권 추심 활동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법안이 국회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악성 채무자에 대한 추심 보장을 위해 추심시간 제한을 푸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
28일 금융계에 따르면 26일 국회 재경위를 통과하고 내달 초 본회의 상정을 앞둔 대부업법 개정안은 불법적이고 부당한 채권 추심에 대한 규제를 대폭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엽서 등 우편물로 채무 변제를 요구하는 등 제3자가 채무 사실을 알 수 있도록 하는 추심 행위를 금지하고, 제3자에게 채무자의 소재를 문의할 수 없도록 하는 것 등이 골자다. 단순히 대부업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금융회사에 적용되며, 이를 어길 때에는 2,0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이와는 반대로 금융감독 당국은 채권 추심시간 연장 등 규제 완화도 동시 추진하고 있다. 금융감독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올해 초 국무회의에서 카드사 등의 요청으로 채권 추심시간을 연장하겠다는 내용의 ‘2005년도 규제개혁 추진 종합계획’을 보고했다. 현재 오후 9시 이후나 공휴일에는 채권 추심을 하지 못하도록 돼 있지만, 이 같은 규제가 카드사의 영업활동을 제약하는데다 악성 채무자들이 이를 악용하는 경우도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금감위 등은 특히 대부업법 개정안과는 정 반대로 악성 채무자에 대한 원활한 채권 추심을 위해 직계 가족에게 채무 사실을 통보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를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금융감독원 내에서도 전혀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규제개혁 차원에서 추심 규제 완화를 추진해 온 금감원 관계자는 "올 하반기부터 추심시간 연장 여부 등에 대해 검토해 볼 생각"이라며 "시장 상황이 계속 바뀌고 있기 때문에 아직 방침을 확정하지는 못했다"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반면 대부업법 개정 작업에 참여했던 다른 금감원 관계자는 "일본에서도 오후 8시 이후에는 채권 추심을 금지하고 있다"며 "현재 오후 9시까지인 추심시간을 연장하는 것은 말이 안 되며, 불법 추심 근절을 위해 규제를 강화하는 방향이 맞다"고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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