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사양산업일지 모르지만 베트남에선 핵심산업입니다. 핵심산업에 돈을 빌려줄 수 없다니 말이 됩니까."
호찌민 외곽의 빈중공단에 자리잡은 신발업체 성현비나를 방문하니 이영만(50) 사장은 분통부터 터트렸다. 최근에도 사업확장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한국에 들어가 금융기관들을 돌았지만 한 푼도 대출받지 못했다고 한다. 신발산업은 사양산업이라 돈을 빌려줄 수 없다는 ‘원칙’만 듣고 왔다.
"본국의 어느 누구도 기업가치를 제대로 평가해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베트남에도 한국 금융기관들의 지사가 나와 있지만 한 명도 공장을 들여다 보지 않아요. 지금 보시지만 이게 사양산업입니까. 땅값만 그간 4~5배나 올랐어요." 그의 울화통은 이어진다. "이곳에서 버는 돈은 대부분 본국에 돌아갑니다. 주문을 한국 본사를 통해 받고, 원부자재 거의 전량을 한국에서 수입하기 때문에 이곳에 떨어지는 것은 인건비와 공장운영비 정도라고요."
이 업체는 1만 2,000평의 대지에 1만여평의 공장시설을 갖추고 종업원 3,100여명이 일하고 있다. 지난해 2,7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고 올해는 3,500만 달러가 목표다. 1999년에 2개 생산라인에 1,200명으로 시작해 6년 만에 3배 이상 성장했다. 여기서 주문자상표표시(OEM) 방식으로 생산하는 운동화는 전량 유럽으로 수출된다. 이 사장은 "이미 올해 주문량은 포화상태라 더 주문을 받을 수 없다. 시설만 확충하면 그만큼 수익을 더 올릴 수 있는데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한탄했다.
그의 속을 더욱 타게 만드는 것은 경쟁사인 대만업체들에 대한 대만 본국의 지원 때문이다. 이 사장은 "대만업체는 생산주문만 받아도 주문금액의 90%를 대출해 준다"며 "그래서 대만업체는 2만~3만명이 일하는 공단급 공장을 세워 물량으로 밀어붙인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생산라인에서 땀을 흘리며 일하는 종업원들을 가리키며 "어디서 한 달에 80달러(8만원) 주고 평균 20, 21세에 세계에서 최고 손재주를 가진 종업원들을 구할 수 있습니까? 120% 만족합니다"라고 말했다.
"이곳을 찾아 내 손을 잡으며 ‘애국자’라고 칭찬하던 국회의원들이 많았지만 달라진 건 하나도 없어요." 이 사장은 더 이상 말하려 하지 않았다.
빈둥=김동국기자 dk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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