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 문제가 짙은 안개 속에 싸여있다. 한치 앞도 분간하기 어렵다. 위기감은 고조되지만 확실한 전망은 없다. 이달 초 북한이 영변 5㎿ 원자로의 가동을 중단시키자 북한의 핵 실험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미국은 북핵 문제의 안보리 회부 등 6자회담 실패 이후의 대안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두 열차가 마주보고 달리는 형국으로 6월 위기설이 나올 수밖에 없다.
북핵 문제를 쭉 관찰해온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과 김성한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김태효 성균관대 교수, 고유환 동국대 교수, 신지호 서강대 겸임교수 등에게 현 상황이 위기인지, 타협 가능성이 있는지 등 본질적인 질문 5가지를 던졌다. 현 국면을 보는 이들의 인식에서도 상당한 간격이 있었다. 북미의 대화의지를 가늠하는 셈법도 달랐다. 도덕적 이상주의의 부시 행정부를 비판하거나 정권 안보상 핵 포기가 어려운 북한의 특성을 꼬집는 양편으로 갈렸다. 정 전장관은 파국을 막기 위해서는 여야 정치권이 초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1. 북핵 문제는 위기 국면인가/ "플루토늄 빼낼 가을이 위기" "초기위기 지나…6월이 고비"
정 전 장관은 진짜 위기는 영변 원자로 폐연료봉에서 플루토늄이 추출되는 움직임이 예상되는 올 가을에 찾아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앞으로 북핵 문제가 유엔으로 회부되더라도 협상의 여지는 많아 파국을 예상하는 것은 이르다"고 말했다.
반면 신 교수는 위기가 초기 단계를 지났고, 6자 회담 중단 1년을 맞고 북한의 핵 동향이 주목되는 6월에 위기상황이 고조될 것이라고 점쳤다.
김성한, 고유환 교수는 아직도 외교적 노력을 통해 위기로 진입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2. 6자회담은 열릴 수 있나/ "압박 고조되면 열릴 것" 전망 "회담 나와도 김빼기만" 지적
현 비관적 상황을 감안하면 의외로 회담 재개 전망이 많았다.
김태효 교수는 "6,7월경 한차례 열릴 수 있다"며 "북이 대화에 응하는 제스처를 취하지 않으면 대북 압박이 강화되고 유엔 안보리 회부명분이 축적된다"고 말했다. 김성한 교수도 대북 압박이 고조되면 6자 회담이나 남북 대화가 재개될 가능성이 높다고 점쳤다.
하지만 이들은 "북한이 회담에 나오더라도 팽팽한 타이어의 바람을 빼는 식으로 긴장국면을 모면하려는 전술만을 펼 것"이라고 예상했다.
고 교수는 회담이 열리기 위해서는 부시 행정부가 먼저 ‘제2의 페리 프로세스’를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북한의 핵 폐기 후 대담한 접근을 하겠다는 입장을 수정해, 단계별 대북 보상 방안을 제시하라는 것이다. 정 전장관도 미국의 양보를 주문했다.
3. 미국은 북한과 협상할 의지가 있는가/ "美, 도덕적 이상주의만 강요" "北 입장 수정하면 타협가능"
정 전장관은 "협상은 이익을 서로 주고 받는 것인데, 미국은 현찰을 내놓지 않은 상태에서 ‘폭정의 전초기지’ 등의 도덕적 이상주의 기준만을 북한에 강요하고 있다"며 "미국에게 협상 의지는 없다고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고 교수는 "미국은 중국 견제나 군산복합체의 이익을 위해 북핵 문제를 끌고 가야 할 필요도 있다"며 "부시 대통령이 큰 틀의 국익을 택할지, 아니면 정권의 이익을 택할 지가 열쇠"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성한 교수는 "3차 6자 회담에서 미국의 제안에 대해 북한 대표단이 반색할 정도로 미국은 현실성이 있는 제안을 내놓고 있다"고 다른 입장을 취했다.
김태효 교수도 이에 동조하면서 "당초 대북에너지 지원에 난색이었던 미국은 북한이 동결과 폐기 과정을 이행하면 우선 구두로도 제공을 약속하고 추후에 실행하는 유연한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신 교수는 "미국도 자신들의 주장을 북한이 100% 수용할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기 때문에 북한이 입장을 수정하면 타협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4. 북한은 핵을 포기할 수 있는가/ "核 쉽게 포기 안할것" 비관적 "80%정도만 포기할 것" 지적
6자 회담의 성공을 가늠하는 핵심 사안인데, 북은 핵을 쉽게 포기할 수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 분석이 다수였다.
김태효 교수는 "크게 보면 미국이 북측에 줄 것은 경제제재 해제 등 비교적 기술적 사항이지만 북한이 내놓아야 할 것은 정권 안보의 지주인 핵 포기"라며 "김정일 위원장 입장에서 핵 포기는 정권 전체를 거는 모험일 수밖에 없으며 자신의 정체성을 재정립해야 하는 어마어마한 문제"라고 말했다.
김성한 교수는 "북한으로서는 핵을 포기하면 미국이 관계정상화를 해줄까 하는 데 의문을 갖고 있다"며 "북한은 미국이 관계정상화 이전에 생화학 무기, 인권 문제 등의 해결도 요구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북한은 핵 보유로 추정됐다가 공격받은 이라크 등의 사례를 통해 핵 보유가 최소한의 안전판이라는 생각을 굳힌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신 교수는 "북한은 제네바합의 이후에 보여주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핵의 80%는 포기하고 20%정도의 핵을 가지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고 교수는 "북한은 핵을 버릴 테니 정권 안전 등 몇 가지를 보장해달라고 애걸하는 상황"이라며 다른 시각을 밝혔다.
5. 언제, 어떤 조건에서 북미 타협은 가능할까/ "한차례 위기 겪어야 타협" "여야 같이 美에 대화압력을"
고 교수는 "대북 강경발언을 취소하라는 북한의 대미 요구는 내부용이기 때문에 이르면 내달 타협점이 모색될 수도 있다"고 낙관했지만 대부분은 한차례의 위기 상황을 겪어야 타협을 기대할 수 있다는 반응이었다.
김성한 교수는 타협의 조건으로 중국의 실질적 중재노력, 북의 폐기 의사, 미국의 구체적인 대북 에너지 지원계획 등을 꼽았다. 신 교수는 위기가 고조될수록 안보리 회부, PSI(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 강화 등에서 입장차가 드러날 것이기 때문에 한미동맹 관리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정 전장관은 "미국이 북핵 중재자를 자임하는 한국 정부를 무시하는 현 상황을 뜯어 고치고, 94년과 같이 한국이 배제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여야, 국민이 한 목소리로 미국에게 대화 압력을 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정상원기자 ornot@hk.co.kr
■ 美 "아직은 지켜봐야"/ 잇단"안보리 제재" 발언 불구 6자회담 유용성 포기안해
‘안보리 가능성은 열려 있다. 그렇다고 6자 회담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플루토늄 추가 축출을 위해 영변 원자로 가동을 중지한다는 북한의 발표 이후 북한 핵 문제의 처리 방향에 대한 미국 관리들의 발언은 안보리 제재 가능성에 대한 은근한 암시를 담고 있다.
18일 스콧 매클렐런 백악관 대변인이 북한의 6자 회담 거부 상황이 계속될 경우의 다음조치로 안보리 회부를 처음 언급한 뒤 조금씩 살을 붙여가는 발언들이 이어지고 있다.
25일 콘돌리사 라이스 국무장관이 "미국은 유엔 안보리가 북한에 대해 조치를 취하는 방안을 추구할 수 있다"고 말한 데 이어 애덤 어럴리 국무부 부대변인도 "6자 회담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최종 판단이 설 경우 취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조치로 안보리 회부 문제가 논의될 것"이라고 재확인했다,
특히 조지 W 부시 정부가 북한 핵 해법의 금과옥조로 여겨온 6자 회담에 대한 회의론이 제기되면서 미국이 안보리 제재 가능성을 실제상황으로 바꿔놓기 위해 명분을 쌓고 있다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6자 회담의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까지 27일 "6자 회담의 향방이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안보리 제재가 미국의 필수선택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시기 상조이다. 미국이 아직 6자 회담에 대한 유용성을 포기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 관리들은 안보리 제재의 운을 띄우면서도 "미국은 여전히 6자 회담 틀에서 많은 일을 해 낼 수 있다고 믿는다"(라이스 장관) "미국의 선택 사항이 아닌 한가지는 6자 회담을 그만두는 것"(힐 차관보) 이라며 회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현재는 지켜봐야 할 국면"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6자 회담에 대한 기대를 잃고 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정책의 변화를 단정짓기를 성급하다는 얘기다.
다만 현재의 분위기가 부시 정부 내에 대북 강경론을 다시 부채질할 여지를 남기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부시 대통령의 지원을 받은 라이스 장관의 ‘외교역할론’에 가려 숨죽여온 강경파들이 북한의 위협을 6자 회담 무용론을 제기하는 명분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북한이 향후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가 부시 정부의 향후 대응 강도를 결정짓게 될 것으로 한반도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ksi8101@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