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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칼럼] '국가의 왼손'으로서의 인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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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칼럼] '국가의 왼손'으로서의 인권위

입력
2005.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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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생전의 한 인터뷰에서 사회국가 성격과 경제국가 성격을 겸한 프랑스의 모순을 설명하기 위해 왼손과 오른손의 비유를 사용한 바 있다. 그는 이른바 ‘지출에 몰두하는’ 정부 부처(한국으로 치자면 예컨대 보건복지부)의 공무원 전체를 ‘국가의 왼손’이라고 불렀다. 국가의 왼손에는 구빈, 실업보호, 의료, 교육, 고용 등 전통적으로 사회사업이라고 불렀던 영역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이 포함된다. 이들은 경제부처, 은행 그리고 내각에 포진한 엘리트로 이뤄진 ‘국가의 오른손’에 맞서 사회경제적 문화적 주변인들을 위해 싸운다.

부르디외에 따르면 국가의 왼손은 과거의 사회적 투쟁이 국가 한복판에 남겨놓은 흔적이다. 이것은 복지예산이 국가의 베풂이 아니라 시민의 권리라는 뜻이다. 부르디외의 이 우아한 분류에는 모호한 데가 하나 있다. 그가 복지나 노동부처 공무원 전체를 국가의 왼손에 포함시킨 동시에 각료 일반을 국가의 오른손에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복지장관이나 노동장관은 국가의 왼손에 속하는가 오른손에 속하는가? 어쩌면 부르디외 자신에게도 그 점이 또렷하지 않았는지 모르지만, 그가 국가의 오른손과 왼손을 각각 국가대귀족, 국가소귀족이라 달리 표현하고 있는 걸 보면, 잠재의식 속에서나마 그들을 오른손에 포함시켰던 것 같다. 그렇다면 복지나 노동 부처 장관은 국가의 왼손을 거느린 국가의 오른손인 셈이다.

급진좌파 일각에서는 ‘국가의 왼손’이라는 개념 자체가 국가와 노동계급의 동맹이 가능하다는 환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부르디외를 비판하기도 했지만, 부르디외는 국가의 왼손이 국가의 오른손에 맞서 수행하는 싸움을 현대 사회운동의 중요한 측면으로 본다. 부르디외가 공명하고 있는 국가의 왼손의 느낌으로는, 국가의 오른손은 왼손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지도 못하고 알고자 하지도 않는다. 특히, 오른손은 왼손이 하는 일에 돈을 들이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 허약한 왼손에 힘을 실어주는 것은 국가가 단지 시장이 아니라 사회공동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모두의 의무일 것이다.

부르디외의 인터뷰가 있은 1992년 프랑스와 지금의 한국을 나란히 놓을 수는 없다. 사회당 정권 아래 프랑스에서도 국가의 오른손이 왼손보다 힘이 셌다면, 신자유주의 해일 속에서 허우적대는 지금 한국에 국가의 왼손이 있기나 할까 하는 체념도 엉뚱하진 않다. 그래도 계급적 양극화의 긴장 속에서 경제국가로 치닫는 대한민국의 페이스메이커로서 국가의 왼손 비슷한 것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국가인권위원회일 것이다. 고하를 막론하고 행정 사법 관료들이 국가의 오른손 노릇을 하고 있는 한국에서,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를 중요한 조사와 구제 대상으로 삼고 있는 인권위는 그나마 국가의 왼손에 가깝다. 그리고 인권위는, 부르디외의 말투를 훔치자면, 1970~80년대 한국 민주화운동이 국가 한복판에 새겨놓은 자랑스러운 흔적이다.

최근 정부의 비정규직 법안이 비정규 노동자들의 차별을 해소하는 데 미흡하다며 기간제 근로자의 사용 사유를 제한하고 파견근로자의 노동3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등의 의견을 낸 인권위가 김대환 노동부 장관으로부터 모멸에 가까운 폭언을 들었다. 이로써 대한민국 노동부 장관은 경제 관료들 이상으로 완고한 국가의 오른손이라는 사실이 증명됐거니와, 출범 이래 인권위가 내놓은 권고와 의견이 국가의 오른손과 언론자본에게 십자포화를 맞은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다시 부르디외를 끌어들이자면, 국가의 왼손은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단은 제공받지 못한 채 사회복지 업무의 제일선에 파견돼 시장논리의 가장 가혹한 결함들을 메워야 하는 사람들"이다. 이것은 한국 상황에서 복지부나 노동부보다는 차라리 인권위에 더 들어맞는 말이다. 인권위에 여론이라는 이름의 시민적 지원이 절실히 필요한 것은 그래서다.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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