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인생은 제로섬 게임일지 모른다. 승자가 있으면 패자가 있고 가진 자의 맞은 편에는 가지지 못한 자가 있기 마련이다.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은 각박한 현실을 잠시 잊고 싶은 달콤한 자기 최면에 불과할 수도 있다.
‘모래와 안개의 집’은 결코 공존 할 수 없는 사람들 각자의 희망과 소유의 충돌을 다룬 영화다. 이혼녀 케이시(제니퍼 코넬리)는 행정당국의 착오에 미지근하게 대응했다가 하루아침에 집을 잃고 길바닥에 나앉는 신세가 된다. 멀리 바닷가가 내다보이는 전망 좋은 그의 집은 아버지가 30년간 허리가 휘도록 고생하며 마련한 보금자리. 물려 받은 지 8개월 만에 황당한 이유로 남에게 내줄 수 없는 노릇이다.
이슬람혁명의 칼날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이란 대령 출신 베라니(벤 킹슬리)는 도로공사장 잡부로 일하면서도 정장을 갈아 입고 퇴근할 정도로 조국에서의 화려했던 과거를 품에 안고 살아가는 사람. 어린 아들의 미래를 위해 경매로 집을 구입한 그가 케이시에게 순순히 양보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케이시를 사랑하는 유부남 경찰 레스터가 끼어 들면서 둘 사이의 대립은 악화일로를 치닫는다.
영화는 특별히 악하다고 할 수 없는, 자신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판단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는 평범한 두 사람이 집을 둘러싸고 감정싸움을 벌이다가 가슴 아픈 파국을 맞이하는 과정을 잔인할 정도로 차분하게 그리고 있다. 단번에 심장이 오그라질 듯한 자극적인 장면을 등장시키는 대신, 감독은 관객의 손에 조금씩 땀이 맺히게 하는 연출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너무나도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려는 두 사람의 갈등을 매개로 차곡차곡 쌓아 올려진 극적 긴장감이 뒷부분에서 자살 등 극단적 방식으로 한꺼번에 무너진 것은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1983년 ‘간디’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벤 킹슬리와 2002년 ‘뷰티풀 마인드’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제니퍼 코넬리의 연기 대결이 쏠쏠한 재미를 안겨준다. 우크나이나 출신인 바딤 피얼먼 감독의 데뷔작. 29일 개봉. 15세.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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