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입 안은 하나의 작은 세상이다. 30여 개의 치아와 소화를 돕는 효소들은 음식 등 외부 환경에 발 빠르게 적응해가며 끊임없이 변화한다. 최근 2년간 보험비 지출 내역 1, 5, 9위가 잇몸 및 치아 관련 질병이라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입 속 질환은 현대인을 괴롭히는 ‘공공의 적’이기도 하다. 대전 한국생명공학연구원(생명연) 유전체연구센터는 26일 ‘치주균 유전체와 기능 컨퍼런스’를 열었다. 이날 회의에는 서울대 치대 김각균 교수, 생명연 이대실 박사 등 생명공학자 및 치의학 박사들이 모여 ‘입 속 미생물’ 퇴치 방법을 논의했다.
입 속에는 통상 700~800개 정도의 세균들이 살고 있다. 충치 및 각종 잇몸질환, 입 냄새 등을 일으키고 나이가 들어 틀니 신세를 지게 하는 원인 역시 입 속 세균들이다. 입 안에선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세균이 몸의 다른 부위로 이탈해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예를 들어 어떤 구강 병원체는 심장병과 깊은 상관관계를 보이며 치주 질환이 심한 산모에게서 저체중 조산율이 높게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몸이 건강할 때는 ‘좋은 세균’이 ‘나쁜 세균’과 경쟁해 이기기 때문에 큰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몸의 면역력이 떨어지거나 입 안을 청결히 관리하지 않을 경우 세균 바이러스 진균(眞菌) 등 각종 나쁜 미생물이 조직을 이뤄 이로운 종들에 대항, 입 안의 조직 표면을 장악하게 된다.
입 속 미생물의 ‘악행’을 처음 고발한 연구자는 1960대 미국 포지스 연구소 시그문트 소크란스키 박사다. 그는 구강염의 일종인 ‘참호병’을 앓는 이들의 잇몸을 파고드는 세균을 발견한 데 이어, 치아에 붙어있는 치태(플라그)의 세균 집단이 병의 차도에 따라 변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는 입 안의 여러 세균, 특히 나쁜 균들이 필요에 따라 짝을 짓거나 그룹을 형성해 집단적으로 행동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같은 연구소 브루스 패스터 박사팀은 2003년 혀에 살고 있는 92종류의 미생물을 추적해 입 냄새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세균을 뽑아냈다. 이들은 10여명을 대상으로 얻은 데이터를 비교, 입 냄새가 있는 쪽과 없는 쪽의 미생물에 큰 차이가 있음을 규명했다. 건강한 입안에서 자라는 몇몇 세균은 입 냄새가 있는 이들에게서 나타나지 않았으며 반대로 건강한 사람에게선 전혀 찾을 수 없는 미생물도 있었다. 이들은 특히 혀에 사는 미생물이 입 냄새와 중요한 연관이 있음을 확인하고 정확한 리스트를 제작 중이다.
미국 국립 치의학 두개안면연구소(NIDCR)는 지난해 말 스탠포드대 연구팀 등과 함께 입 안의 모든 세균 유전자 목록을 작성키 위한 3년 연구에 돌입했다. 이들은 여러 건강 상태에 있는 사람들의 치아 잇몸 혀 입천장 등에서 유전자 샘플을 채취, 구강 미생물 약 4만개의 유전자를 밝혀낼 예정이다. 서울대 김각균 교수는 "구강 미생물은 입 밖에서 배양하기가 쉽지 않아 그 동안 연구가 활발하지 못했다"면서 "그러나 유전자 분석기법이 발달하면서 앞으로 나쁜 미생물만 죽이는 구강 세정제나 충치를 억제하는 세균 등이 치료 및 예방에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미국의 한 회사는 충치를 일으키는 세균의 유전학적 성질을 바꾼 후 입안에 다시 넣어주는 ‘유전자 충치 예방법’을 개발, 틀니 착용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만약 입 안으로 들어간 ‘유전자 변이 세균’을 확실하게 제거할 수 있는 방법만 찾아낸다면 실제 치아 대상의 획기적인 충치 예방법이 등장할 가능성도 높다.
이번 컨퍼러스를 주최한 생명연 이대실 박사는 "바이오 테러 등에 대한 두려움이 높아지면서 세균 유전체 분석정보는 다른 나라에 공개하지 않는 상황"이라며 "우리나라의 경우 구강 세균 3종에 대한 유전자 분석을 거의 끝냈다"고 설명했다. 그는 "40세가 넘은 사람에게서 거의 100% 발병, 천문학적 의료비가 들어가는 치주염의 원인과 치료법을 유전자 차원에서 규명할 수 있다면 인류의 삶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신영기자 ddalg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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