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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세상/ '혈의 누'서 연기변신 박용우 "부드러운 눈 속에 핏빛 욕망이 담겼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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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세상/ '혈의 누'서 연기변신 박용우 "부드러운 눈 속에 핏빛 욕망이 담겼대요"

입력
2005.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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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하라고 말씀 하십시오. 그래야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혈의 누’(좋은영화 제작·4일 개봉)를 준비하고 있던 김대승 감독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박용우(34)는 이 한마디를 던진 후, 입을 다물었다. "좋다. 같이 하자"는 답이 나올 때까지. 탐색차 자리에 나온 김 감독은 적잖이 당황했다. 그런데, 박용우는 절실했다.

"나한테는 왜 말랑한 역만 들어오는 걸까. 생긴 거 때문인가, 줄이 없어 그러나…." 애꿎은 원망을 날리며 소주도 많이 마셨다. 김명민과 함께 출연해 85%까지 촬영을 마치고 엎어졌던 영화 ‘스턴트맨’이 안겨 준 상처도 꽤나 컸다. 곱살하게 생긴 외모 때문에 ‘부잣집 아들’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한 이미지는 짐이었다.

대학교수와 음악 교사였던 부모님 아래서 유복하게 자란 덕에 지닌 유연함과 따스함은 연기에 걸림돌인 것도 같았다. "진정한 연기는 고생해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거야." 선배들의 충고에 괜히 부아도 났다. ‘무인시대’의 경대승, ‘애정의 조건’에서 자기 아이를 가진 여자를 냉정하게 차버리는 남자 등, 그 짐을 내려 놓으려는 노력의 연장선상에 ‘혈의 누’가 있다.

‘혈의 누’의 배경인 동화도는 욕망이 꿈틀대는 섬이다. 조선말기, 제지업이 번창한 이 섬에서 조정에 바칠 종이를 실은 수송선이 불타자 수사관(차승원)이 파견된다. 이후 섬에는 잔혹한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주민들은 7년 전 ‘천주쟁이’로 몰려 참형 당한 강객주의 저주라며 두려워 한다. 박용우가 맡은 역은 제지소집 아들인 인권. 자본주의가 싹트고 신분질서가 붕괴하는 시기, 지킬 것과 깨버려야 할 것 사이에서 흔들리는 섬 주민의 욕망 한가운데 인권이 있다. 박용우의 냉정한 눈빛이 사연이 가득 담긴 슬픈 눈으로 변하는 순간 하늘에서는 혈의 누, 피비가 내린다.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으니, "초반과 뒷부분의 전혀 다른 느낌을 표현하느라 고생했다"는 정도로 그의 배역을 설명하기로 하자.

숨겨져 있던 악인 기질을 발견한 건 최근의 일이다. "저도 전혀 몰랐어요. ‘무인시대’에 저를 캐스팅 했던 PD님이 드라마 ‘종이학’을 우연히 봤는데 제 눈에 살기가 있다고 하셨죠. 아시겠지만, ‘종이학’에서 저의 배역은 좀 코믹했는데 말이죠." ‘정면을 2초간 보고 나서 고개를 15도 돌린다’는 식으로 까다로운 연기 주문을 하는 김 감독과 함께 하며 "왜 나를 못 믿나, 내가 인기가 없어 그러나" 하는 생각에 섭섭하기도 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았다. "‘자기애’에 빠져 나를 보지 못한 거죠. 감독님은 저의 주근깨, 코딱지, 눈곱까지 적나라하게 비추는 거울이었어요. 결점을 깨닫게 해 주셨죠."

영화 ‘초록 물고기’를 봤을 때, 송강호만 보이더란다. 송강호가 연기한 건달 판수는 조연이었지만 그 충격이 대단해, "지금도 ‘초록물고기’는 송강호의 영화"라 생각한다. 어항 들고 왔다 갔다 하는 신참 정보요원으로 출연했던 영화 ‘쉬리’는 송강호와 함께 연기하려, 얻어낸 배역이었다.

연기를 시작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신인 취급"인 터라 자괴감도 들지만, 큰 배우보다는 시간이 걸려도, 좋은 배우가 되는 게 꿈이다. "주인공 욕심보다는… ‘초록물고기’의 송강호 선배처럼 작지만 빛나는 연기를 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최지향기자 mis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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