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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향기자의 씨네 다이어리/‘아저씨’가 더 야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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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향기자의 씨네 다이어리/‘아저씨’가 더 야릇하다

입력
2005.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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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와 나는 이번 세상에서는 인연이 없어. 다음 세상에서는 절대 아저씨를 놓치지 않을 거야."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를 보면서 임수정이 소지섭을 부르는 ‘아저씨’를 들을 때, 슈퍼 아저씨나 택배 아저씨를 부를 때와 달리, 어쩜 이리 애절한 느낌을 뿜어내는가 싶었다.

"아저씨가 뭐냐, 오빠라고 불러." 많은 남성은 오빠라는 호칭에 집착하는 듯 하다. 하지만 ‘아저씨’로 불리는 애인이 등장하면서 ‘아저씨’라는 단어는 또 다른 환상을 안겨주는 것 같다. 남자에게는 자신을 ‘아저씨’로 부르는 미성숙하지만 어린 애인을 두고 싶은 욕망을, 여자에게는 ‘키다리 아저씨’처럼 늘 자신을 보호해 주는 애인을 두고 싶은 욕망을 자극한다.

‘아저씨’라는 호칭은 "나는 아직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어린 아이에요. 저의 세계에 아직은 들어오시면 안돼요"라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영화 ‘댄서의 순정’에서 문근영의 첫 대사 "아즈바이(아저씨)"가 그렇다.

위장결혼한 남편을 바라보며 "미안함다. 부부처럼 지내려면 같이 자야 한다는데…"라며 엉엉 울다가, 다른 잠자리를 마련해 주는 그를 보고는 "같이 안 자도 됩니까?"라며 바로 소녀같은 표정을 짓는 문근영은 결혼하면 같이 자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아는 어른이다. 동시에, "안아보라"는 남편의 말에 엉덩이를 쭉 빼고 어색하게 허리를 부여잡고, 춤 연습하러 나올 때는 중학교 운동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초록색 체육복에 빨간 끈으로 머리카락을 묶고 나오는 소녀다.

‘어린 신부’에서 문근영은 ‘나는 사랑을 아직 몰라’를 부르며 소녀와 어른의 경계에 놓인 자신의 세계를 지켜냈다. ‘댄서의 순정’에서 그 미지의 세계를 지키는 열쇠는 바로 ‘아즈바이’라는 호칭이다. 남자들에게 ‘아슬아슬한 떨림’의 대상인 문근영은 사랑을 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있는 나이인 것이다.

문근영이 종종 걸음 치며 "여보, 여보" 또는 "자기야!"라고 남자 주인공을 부를 때보다 특유의 순진한 눈빛으로 ‘아즈바이’라고 말할 때 "어쩐지 조마조마하고 더 안달 난다"는 남자들의 반응을 들어보면 정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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