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 "더 밀리면 집값 못잡아" 초강수
재건축 사업에 대한 범정부 차원의 압박이 가해지고 있는 가운데 송파구청이 잠실 주공2단지의 분양승인을 강행, 재건축 대책이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의 대결 양상을 보이는 등 혼선을 빚고 있다.
정부는 ‘여기서 밀리면 집값 안정기조는 끝장’이라는 판단 하에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분양승인을 받은 업체라도 사후 정밀조사를 통해 분양승인 취소 등을 내린다는 방침이다.
◆ 개발이익환수제 = 재건축 파동의 직접적인 원인은 내달 18일부터 적용되는 개발이익환수제 실시다. 개정된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에 따르면 5월 17일까지 분양승인을 신청한 재건축 단지는 용적률 증가분의 10%를 의무적으로 임대아파트로 지어야 하는 개발이익환수제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강남 저밀도 재건축들도 이를 피하기 위해 서둘러 분양승인을 신청한 단지들이다. 임대아파트를 의무 건립할 경우 재건축의 사업성이 크게 떨어지고 향후 집값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에 따라 개발이익환수제를 피할 수 있는 단지들의 가격이 최근 급등했고 해당 조합은 이를 활용해 일반 분양가를 평당 2,000만원 가까이 올렸다. 그러나 이 같은 고분양은 부메랑이 돼 정부의 재건축 강경 대책의 빌미를 준 셈이 됐다.
◆ 정부입장 = 정부가 재건축에 대해 초강경 입장을 견지할 수 있었던 것도 재건축의 이런 약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재건축 조합의 고가 분양으로 주변 집값까지 폭등하자 분양승인을 보류할 수 있다는 무기로 재건축 조합에 분양가 인하를 압박했다. 하지만 분양승인 권한을 가진 일선 구청이 정부 권고에 반해 분양승인을 해 주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지자체가 재건축 분양승인 권한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정부가 재건축에 대한 제재를 가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부는 여기서 밀리면 권위 추락으로 재건축은 물론 집값 안정기조가 일시에 무너질 수 있다고 보고 개발이익환수제가 실시되는 다음달 18일까지 강공 기조를 이어갈 태세다.
◆ 재건축단지 = 정부의 관리처분 인가 취소 등의 초강경 방침에 잔뜩 위축됐던 강남 재건축단지들은 송파구청의 분양승인으로 일단 숨통이 트였다는 반응이다. 정부가 국세청, 경찰까지 총동원해 재건축 다잡기에 나선 만큼 분양가 인하 등을 통해 우선 급한 불은 끄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부는 중대한 절차상의 문제가 있는 곳에 대해서는 초강경 조치를 취할 방침이다. 건교부 한창섭 주거환경과장은 "도곡2차는 대지소유권을 두고 소송이 진행되는 등 법원판결에 따라 일반분양 자체가 무효화할 수 있어 구청에 한달간 분양승인 보류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잠실 시영과 강동시영 1차 등 도곡 2차와 비슷한 ‘미동의자 매도청구소송’이 진행되는 재건축단지는 분양 승인이 보류될 것으로 보인다.
건설산업연구원 김현아 박사는 "경찰 수사나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에서 문제점이 드러난 재건축 단지는 사업 추진을 미룰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그러나 정부가 시장원리를 거스르는 공권력을 사용하기에 앞서 강남권의 신규 주택공급 등 중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송영웅기자 herosong@hk.co.kr
■ 부동산 전문가들 반응/ "정부 조치는 단기적 효과"
부동산 전문가들은 정부의 이번 조치로 재건축 아파트의 가격이 단기적으로는 하향 조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내집마련정보사 김영진대표는 "정부가 개발이익환수제와 안전진단 강화 등 실효성 있는 조치에 이어 세무조사라는 심리적인 압박수단까지 동원함에 따라 당분간 가격 상승세와 매수세가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향후 분양예정 재건축 단지들이 자율적으로 분양가를 인하할 것으로 내다봤다. 세중코리아 김학권대표는 "정부가 분양승인 단지나 분양승인 예정 단지를 타깃으로 분양가 인하를 유도하고 있는 만큼 재건축 아파트 추진 조합들이 자율적으로 분양가를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중장기적으로는 가격을 잡는데 한계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2003년 시행된 ‘재건축아파트 후분양제’의 영향으로 하반기부터 2~3년간 강남 재건축 일반 물량이 사라지게 돼 수급 불균형에 따른 가격 불안이 커지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올 상반기에 집중된 재건축 일반 분양이 끝나면 반포주공 재건축이 나오는 2~3년 후까지 강남권 일반 분양은 거의 없다. 결국 강남권 아파트 공급 물량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재건축이 사라지면 또 다시 아파트 공급 부족으로 가격이 오르게 된다는 지적이다. 시간과 공간 한광호대표는 "강남 주거단지로 들어오려는 수요에 비해 양질의 주택 공급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것이 강남 아파트 가격 상승의 본질적 문제"라며 "정부가 아무리 가격을 통제하더라도 수급을 늘리지 않는 한 효과는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신규 택지개발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면 왕십리 등 뉴타운 개발과 그린벨트에 들어서는 택지지구 개발 일정을 앞당겨 추진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김혁기자 hyukk@hk.co.kr
■ 분양가 얼마나 내려갈까/ 신도곡 31평형 분양가 평당 78만원 인하
불과 한 달 만에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씩 오른 재건축 단지들의 일반 분양가는 과연 얼마나 내려갈 수 있을까.
정부가 일반분양가를 높이 책정한 서울 강남권 재건축 단지를 향해 분양승인 거부와 관리처분계획 취소 처분이란 초강경 카드를 내세워 재건축 시장과의 전면전을 선포함에 따라 재건축 단지들이 잇따라 분양가를 내리면서 몸을 사리고 있다.
지난 주 강남구청으로부터 분양승인을 받은 신도곡 재건축 단지는 22평형의 경우 평당 47만~64만원을 내렸다. 6억583만원에 분양하려던 31평형도 2,456만원(평당 78만원) 인하해 5억8,127만원에 일반분양가를 결정했다.
강남구청으로부터 한달간 분양승인 보류 결정을 받은 도곡주공2단지는 2가구를 분양하는 32평형에 대해서만 570만원 내린 6억5,430만원에 분양하기로 결정했다. 149가구가 분양되는 23평형은 당초 계획대로 4억6,000만원(1,932만원)에 분양키로 정했다. 그러나 분양승인이 불투명한 상태에 있는 만큼 시공사와 조합, 조합원들간 의견 수렴을 거쳐 분양가를 다소 내릴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시공업체 관계자는 "현 상태로서는 분양가를 내리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그러나 일부 조합원들 사이에서 분양가를 하향 조정하더라도 사업을 빨리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인근 재건축 단지들도 분양 승인을 받기 위해 일반분양가 인하 문제를 놓고 고심중이다. 분양승인 신청을 목전에 둔 잠실시영 재건축 단지는 관리처분계획안에 맞춰 분양승인을 신청할 계획인데 최근 조합과 시공사가 분양가 인하 문제를 놓고 논의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시공업체 관계자는 "분양가 인하 방침이 정해지지 않았지만 관리처분 당시 4억6,670만원(평당 1,795만원)에 분양가가 정해진 잠실시영 26평형은 평당 20만원 가량 내린 4억6,150만원 선에서 분양승인 신청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잠실주공1단지도 분양가 인하 계획 없이 관리처분총회 내용대로 분양승인을 신청할 예정이지만 구청의 분양승인을 얻기 위해서는 분양가 인하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25평형만 일반 분양되는 잠실주공1단지는 관리처분계획대로라면 4억4,875만원(평당 1,795만원)에 분양될 예정이다. 잠실주공1단지 조합 관계자는 "최근 상황을 지켜볼 때 관리처분 내용대로 일반 분양가가 결정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최종 승인을 받으려면 적어도 분양가를 내리는 시늉이라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태훤기자 besa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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