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선거는 인간을 피폐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하다 못해 동네 선거에라도 한번 나가본 사람이라면 이게 무슨 말인지 실감할 것이다. 선거 때문에 우정이 깨지고 서로 싸우게 된 사람들은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다. 사회봉사단체의 대표를 뽑는 선거에서조차 돈질이 난무한다. 선거는 사회도 피폐하게 만든다. ‘선거의 축제화’는 영원히 실현하기 어려운 이상이다. 선거는 인간의 탐욕을 극한대로 드러나게 만드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거를 부정해야 할까? 그렇진 않다. 선거는 민주주의를 위한 필요악이다. 선거의 부작용이 아무리 크다 해도 선거로 지도자를 뽑는 것이 어느 힘센 사람이 어느 집단을 영원히 지배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선거가 유발하는 사회적 비용의 최소화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민주주의를 하는 모든 나라에 ‘영구 캠페인’이라는 괴물이 나타났다. 미국에서 나온 이 개념은 오늘날 미국 대통령의 통치행위가 영원한 선거 캠페인 체제로 접어 들었다는 판단에 근거한다. 대통령의 행위에서 다음 선거를 겨냥한 정략이 가장 중요한 고려 사항이 되었다는 것이다.
미국 지식인들은 ‘영구 캠페인’의 부작용이 심각하다고 아우성치지만, 한국에서 보기엔 엄살 같다. 한국 사회의 특성이라 할 초강력 연고주의, 초중앙집권적 ‘소용돌이 문화’, 높은 정치의존도, 높은 해외의존도 등이 미국엔 없거나 비교적 약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 사회는 ‘영구 캠페인’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다. 특히 여당은 무슨 선거 때만 되면 자신이 탄생한 이유를 원초적으로 부정하는 잇단 자해(自害) 행위를 저지르면서도 입으론 계속 ‘개혁’을 부르짖는 분열증세를 보이고 있으니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
정부여당은 말할 것도 없고 야당과 모든 지방자치단체장들도 1년 365일 내내 ‘일상적 삶의 선거캠페인화’에 몰두하고 있다. 그 와중에서 행정과 정책은 왜곡되고 비전과 인내는 실종되고 분열과 갈등은 심화된다. 이 모든 게 망국으로 가는 길을 닦고 있는 건 아닌지 모두 한번쯤 겁을 먹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영구 캠페인’의 유혹은 마약이다. 언론도 그러면 안된다고 비판하면서도 캠페인의 흥미성을 높이 사 그 판에 뛰어들고, 대중도 혀를 끌끌 차면서도 캠페인이 제공하는 승패우열의 재미에 빠져든다.
선거는 후보자들만의 게임은 아니다. 그건 선거 캠프간의 게임이고 선거 캠프에 몸담은 사람들의 인적 네트워크에 포진한 사람들간의 게임이기도 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고급인력이 각 단위의 선거 캠프에 몸을 담고 ‘코리언 드림’을 향해 뛰고 있으며, 다양한 종류의 이해관계자들이 어느 쪽에 줄을 설 것인지를 놓고 저울질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선 ‘개혁’은 영원히 실현되기 어렵다. 개혁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르기 위해선 반드시 이겨야만 하고, 이기기 위해선 ‘떡’을 흔들면서 사람들을 불러 모아야 한다. 나중에 권력 잡아 단맛 보면 권력을 계속 잡아야 할 이유를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되고 그래서 ‘떡 장사’ 하다가 볼장 다본다.
대안이 없는 건 아니다. 지도자가 직접 권한을 행사해야 할 핵심 분야를 제외한 ‘인사’와 ‘예산’의 영역을 투명하게 제도화하는 것이다. ‘인사’와 ‘예산’이 ‘영구 캠페인’의 제물이 되지 않게 함으로써 사회 전반의 ‘과잉 정치화’를 억제하는 것이다. 즉, 지도자의 업무 중 상당 부분을 항구적인 시스템으로 대체해 선거가 승자독식주의와 사생결단의 전쟁이 되는 강도를 낮춰주는 것이다. 각 단위의 지도자 권력에서 ‘정치 잉여’를 줄이고 이권 분배 기능을 투명하게 만들지 않는 한 선거에 목숨 걸고 미쳐 돌아가는 사람들의 수는 결코 줄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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