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은 탱크나 총칼 같은 무력이 아니라 청년과 장년, 노년이 함께 모인 전 국민의 합의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한국과 예멘이 공식 수교한 1985년 이후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 알리 압둘라 살레 예멘 대통령이 26일 서울대에서 ‘예멘 통일의 실현과정’을 주제로 특별강연을 했다.
살레 대통령은 오후 서울대 문화관 중강당에서 통일포럼 주최로 열린 특강에서 "예멘의 통일도 처음부터 순조롭지 않았으며 엄청난 우여곡절을 겪었다"며 "남예멘과 북예멘이 각각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라는 다른 체제를 갖고 있었던데다 외부의 간섭으로 인해 합의점을 찾는 데 난항을 거듭해야 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는 "예멘의 통일 논의는 70년대 초반부터 시작됐으나 이념을 달리하는 양측 지도자들이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협상에 임한 까닭에 합의를 이끌어 내기 어려웠다"며 "특히 86년에는 남예멘의 캄비 대통령이 관저로 배달된 사제 폭탄에 암살당하면서 양측이 심한 갈등을 겪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어 "이런 갖가지 어려움을 딛고 일구어 낸 예멘 통일의 가장 큰 특징은 남북 양측 지도부에 대해 국민들이 인내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통일에 필요한 조건을 제시했다는 점"이라고 강조하고 "자본주의 체제의 북예멘이 경제적·군사적으로 유리한 상황에서도 힘으로 상대를 압도하려 하지 않고 먼저 양보를 하려고 노력한 것이 평화적인 통일의 초석이 되었다"고 분석했다. 살레 대통령은 특히 "우리는 한국이 평화적 통일을 이루기 위해 필요하다면 언제든 경험을 나누어 줄 준비가 돼 있다"며 "내가 직접 참여한 통일과정을 기록한 책을 한국에 남기고 가니 이를 보고 서로의 경험을 나누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강연에는 중동 지역 각국 대사 등 외교관 수십여 명을 비롯해 교수, 학생 등 500여 명이 강당을 가득 메운 채 강의를 들었다. 강연장 외부에는 금속탐지기가 설치돼 입장객을 일일이 검문했다.
26일 사흘 일정으로 방한한 살레 대통령은 강연에 앞서 노무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날 특강은 살레 대통령이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룬 예멘의 경험을 한국인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뜻을 밝혀 이뤄졌다.
1962년 군사쿠데타에 참여한 뒤 정치에 입문, 78년 북예멘 대통령에 취임한 살레 대통령은 90년 평화통일 과정을 주도해 통일 예멘의 초대 대통령직에 오른 이후 지금에 이르고 있다. 예멘은 90년 통일을 이뤘지만 94년 내전이 발발해 무력으로 재통일됐다.
전성철기자 foryou@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