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 70년대 우리의 산업공단 정문 앞이 이랬을까. 인간 쓰나미
(tsunami·해일)였다. 18일 아침 호찌민에서 16㎞가량 떨어진 린쭝 수출가공공단 정문 앞. 오전 6시 40분께부터 정문 앞을 지나는 8차선 도로의 절반을 1㎞가량 점령하며 밀려들기 시작한 인파는 40여분 가량 계속됐다. 족히 10만은 넘어 보였다. 대부분 푸른 윗옷과 검은 바지를 입은 20대 젊은 남녀들은 수많은 오토바이와 차량들과 뒤범벅이 된 채 도로를 메우며 정문까지 밀려와 공단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밝고 자신감이 엿보이는 젊은이들의 얼굴에서 경제력 세계 164위 극빈국의 모습을 생각하긴 어려웠다. 연간 7%대의 착실한 경제성장을 지속하며 향후 인도차이나와 동북아를 잇는 중심국으로 부상하려는 베트남의 저력은 이런 모습일까?
올해는 승전 30주년이 되는 기념비적 해이지만 베트남의 현재는 올해가 개혁개방정책인 ‘도이모이(쇄신)’를 채택한 지 20년째라는 데 더 관심을 갖게 한다. 1986년 도입된 도이모이는 사회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과도기적 경제발전 모델로 시장경제를 받아들인 것이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베트남의 시장경제는 ‘돌아올 수 없을 만큼 멀리 갔다’는 것이 대내외의 일반적 평가다.
베트남 사회과학원 경제연구소 쩐 딩 티엔 교수는 "베트남의 과거 역사에서 이만큼 성공적인 경제개혁은 없었다"며 "과거엔 정부가 모든 것을 결정했지만 이제는 국민이 정책결정에 참여해 경제발전을 도모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이모이 도입 후 1인당 GDP는 4.3배 증가했다. 지난해 1인당 GDP는 540달러다. 국제기준으로 베트남의 절대빈곤수는 1993년 인구의 58%에서 지난해 28%로 내려 앉았다. 2000년 기업법이 발효되면서 5,000개이던 민간기업은 4년 만에 15만개로 증가해 성장의 주체로 등장했다. 2000년 76만명이던 이동전화가입자는 지난해 470만명으로 6배가 증가했고 올해는 550만명에 이를 전망이다. 지난해 휴대폰은 신제품 200만대를 포함해 300만대가 팔려 나갔다.
베트남은 ‘중국 대체지’로 강력하게 부상하고 있다. 중국의 70% 수준인 싼 인건비와 뛰어난 손재주를 지닌 노동력, 미국 유럽 등을 향한 우회수출기지 등의 매력으로 외국 투자자본을 끌어당기고 있다.
지난해 외국인 직접투자는 41억 5,000만 달러. 전년보다 28.6% 증가하며 90년대 말 이후 최다액을 기록했다. 김영웅 KOTRA 하노이 무역관장은 "최근 들어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베트남으로 공장을 옮기려고 사전조사를 의뢰한 경우가 한 달에 20여건이 된다"고 말했다.
베트남은 지난해 10월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를 개최하면서 국제무대에서의 높아진 위상을 확인했다. 1997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 가입하고 2000년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의 의장국을 맡는 등 국제사회에서의 입지도 강화했다.
이러한 변화와 성장에 대해 베트남은 아직 ‘불만족’이다. 베트남 투자기획부 국가경제국 응웬 뜨 넛 부국장은 "경제개혁의 방향과 과정, 속도에서는 성공적이었지만 효과는 아직 만족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여전히 국가와 국영기업 등이 투자의 가장 중요한 주체로 남아있으면서 자원, 자금, 노동 등의 활용이 민간부문만큼 효과적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 산업인프라의 턱없는 부족과 느린 공업화 속도, 성장의 부작용인 빈부 격차, 남북 불균형 발전과 갈등, 부정부패 등이 해결해야 할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
특별취재반
김동국기자 dkkim@hk.co.kr
이태규기자 tglee@hk.co.kr
사진 류효진기자 jsknight@hk.co.kr
■ 한국, 베트남투자 47억弗로 4위
베트남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FDI)는 베트남 경제성장의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다.
외국인 투자를 처음 허용한 1988년 37건에 3억 7,000만 달러이던 투자규모는 지난해 말까지 5,110건, 457억 7,000만 달러로 120배 이상 증가했다. 지난해 외국인 투자 41억 5,000만 달러는 총 GDP(452억 달러)의 9.2%에 해당하는 규모다. 베트남 산업생산에서 FDI가 차지하는 비중은 36%로 국영부문(39%)과 비슷하고 민간부문(25%)보다는 훨씬 앞선다.
지난해 베트남 FDI는 전년에 비해 28.6% 증가했다. 베트남 경제성장과 잠재력에 대한 국제투자가들의 낙관론을 반영하는 대목이다. 외국인 투자는 베트남 정부의 해외투자 유치를 위한 제도·법령 정비와 인센티브제 확대 등에 힘입어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말까지 투자금액 기준으로 싱가포르가 79억 9,700만 달러를 투자해 최대 투자국이 됐고, 한국(47억 9,500만 달러)은 대만(73억 900만 달러), 일본(54억 5,600만 달러)에 이어 4위다.
싱가포르는 주로 호텔, 여행, 서비스산업, 건설분야에 전체 투자금액의 54%가량을 집중시키고 있다. 대만은 투자건수에서는 1,269건으로 가장 많다.
일본은 싱가포르 대만 한국과 달리 전기전자, 자동차 등 중공업 분야에 집중투자하며 하이퐁의 노무라공단 등 일본기업이 개발한 공단지역에 근거를 두고 있다.
■ 2~3년새 땅값 4~5배로 하노이 아파트값 서울 수준
베트남에도 부동산 투기바람이 거세다. 부동산 값은 웬만한 선진국 이상이다. 대만계 자본인 에버포춘(Ever Fortune)은 올 초 하노이 중심가인 리 텅 끼엣 지역에 건설 중인 ‘퍼시픽 팰리스’를 평당 7,500~9,000달러에 분양했다. 분양은 공고가 나간 지 1개월 만에 끝났다. 현지 부동산업계는 입주가 시작되는 내년 말에는 평당 1만2,000~1만5,000달러를 넘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서울 일반 아파트 값과 비슷하다.
호찌민의 ‘파스퇴르 코트’나 ‘미 빙 아파트’ 등도 평당 분양가가 6,000달러를 넘는다. 하노이의 최고 중심가의 상가는 평당 10만 달러(1억원)가 넘는다는 소문도 있다.
땅값도 예외가 아니다. 호찌민 인근의 한 공단에 입주한 한국업체 사장은 "최근 2, 3년 사이 땅값이 4~5배 올랐다"고 말했다. 공단이 아닌 구찌 지역에 90년대 초반에 공장을 지은 다른 한국업체 관계자도 "땅값이 그동안 27배가 뛰었다"고 말했다.
부동산값 폭등은 2000년대 초반 외국인이나 해외 거주 베트남인에게 일정 기간 거주하면 토지를 소유할 수 있게 해주고 건축을 허가했기 때문이다. 이한철 KOTRA 호찌민 무역관장은 "이보다 큰 원인은 ‘비엣큐(교민)’들이 1년에 40억 달러에 달하는 돈을 국내에 송금해 오는데 금융기관을 신뢰하지 않는 베트남인들이 이를 장롱 속에 간직하다 부동산에 투자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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