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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봄 숲의 색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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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봄 숲의 색깔

입력
2005.04.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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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갑자기 초여름으로 건너 뛴 것 같다. 3월 말까지 이어지던 꽃샘추위가 물러가고 이제 봄날이구나 싶던 것도 잠시, 낮 기온이 20도를 넘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봄이 실종됐다는 말이 실감 난다. 그러다 보니 꽃샘추위에 늑장을 부렸던 나무들이 꽃과 잎을 한꺼번에 피워 올리느라 야단들이다. 느티나무와 은행나무 가로수 잎들은 제법 그늘을 드리울 정도로 자랐다. 연두색 어린 잎들은 꽃보다 아름답다. 갓난아기의 손바닥처럼 앙증맞은 어린 잎들은 솜털이 보송보송하고 흠 하나 없다. 어린 잎들이 바람에 살랑거리면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소리가 난다.

■ 주변의 신록들도 싱그럽지만 건너다 보는 숲의 색깔은 가히 환상적이다. 연두 담황 담록 담적 등 파스텔 톤의 담채색 변화가 형언하기 어려울 만큼 다채롭다. 식물학자들에 따르면 봄 숲은 그 색깔이 수만 가지에 이른다고 한다. 나무 종류마다 제각각 다른 빛깔의 꽃눈과 잎눈을 틔워내는 데다 같은 나무라도 뿌리를 내린 토양이나 햇볕을 받는 정도에 따라, 그리고 조금 일찍 핀 것과 나중에 핀 잎의 색깔이 달라 헤아릴 수 없는 색의 조화가 빚어지기 때문이다.

■ 나무들은 추운 겨울 동안 꽃눈과 잎눈 속에 여행가방을 싸듯 솜씨 좋게 차곡차곡 꽃과 잎의 원형을 간직했다가 때가 되면 일제히 피워낸다. 숲에서 가장 먼저 연초록 잎을 피워올리는 낙엽활엽수는 귀룽나무다. 참나무 종류는 등황색에 가까운 연두빛 새순으로 봄을 알린다. 새순이 자줏빛이 돈다 싶으면 영락 없이 서어나무다. 단풍나무 종류의 어린 잎도 붉은 색조를 띤다. 잎은 늦게 피지만 층층나무는 붉은 색 줄기로 숲의 색깔 잔치에 한 몫을 한다.

■ 이런 봄 숲에 개살구, 산벚나무가 꽃망울을 터뜨리면 숲은 그대로 한 폭의 자수가 된다. 어떤 이는 이렇게 숲의 색깔이 시시각각으로 달라지는 날에는 산자락이 잘 건너다 보이는 곳에 의자를 놓고 하루종일을 앉아서 바라봐도 싫증이 안 난다고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봄 숲의 색깔 잔치는 금방 끝나버린다. 일년 중 숲이 가장 아름다운 때인데도 사람들이 대부분 모르고 넘어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번 주말에는 일상의 번잡을 내려 놓고 교외로 나가 봄 숲의 눈 시린 색깔 잔치를 감상해 보시길.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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