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10조원 대에 이르는 무기 및 군수품 도입을 책임지게 될 방위사업청의 윤곽이 드러났다.
25일 한국일보가 단독 입수한 방위사업법의 내용은 무기도입과 관련한 조직이 지나치게 분산돼 있고 비리도 끊이지 않는다는 지적에 따라 내년 초 통합조직으로 방위사업청을 출범시킨다는 게 골자다. 정부는 이를 계기로 무기도입 과정의 효율성과 투명성을 높이는 장치들을 마련했다고 주장하지만 일각에서는 또 하나의 공룡조직 탄생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 도입 배경 = 현대전은 첨단무기의 격전장이라는 맥락에서 무기도입을 책임지는 구매 부서는 육·해·공군에 이어 ‘제4군’으로 불린다.
하지만 우리의 무기도입 시스템은 그동안 체계가 없었다. 또 국방부나 군 조직이 육군위주로 구성돼 있어 전력증강이 고르게 진행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현재 방위사업의 정책기획 분야는 국방부, 시험평가는 합동참모본부, 사업관리 및 계약은 각군과 국방조달본부가 책임지고 규격관리는 품질관리소에서 담당하는 등 무기도입 업무가 8개 기관에 분산돼 있다. 이 같은 복잡한 의사결정체계로 사업기간이 장기화할 뿐 아니라 예산이 낭비되고 책임소재가 불분명해지면서 업무처리가 ‘형식적’이라는 지적이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다.
기능과 조직이 분산돼 있다 보니 무기도입과 관련한 크고 작은 비리도 끊임없이 터졌다. 전력증강 사업인 율곡사업과 관련, 이상훈·이종구 전 국방장관이 구속됐고 경전투기사업으로 업체에서 금품을 받은 이양호 전 장관도 구속된 바 있다.
더욱이 막대한 예산을 수반하는 사업인데도 지금까지는 법률에 근거하지 않고 국방부 내부 훈령에 따라 사업을 진행해 왔다. 국방부 관계자들이 "규정개정을 통해 사실상 불가능한 사업이 추진된 사례도 없지 않다"고 털어놓을 정도로 투명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 의의와 전망 = 우선 방위사업 조직이 방위사업청으로 통합됨에 따라 무기도입 관련 조직이 단순화하고 사업절차도 간소화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가령 전력증강을 위한 중기계획을 세우는 데 각 군별로 2회, 국방부 4회, 국가안전보장회의 1회 등 모두 7회 이상의 검토가 필요했으나 앞으로는 이 절차가 3회로 대폭 줄고 결재도 각군 사업단에서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14단계에서 9단계로 줄어든다. 조직 통폐합으로 인력도 2,200~2,300명으로 200여명 가량 줄고 예산도 전력투자비의 5%인 3,000억원 정도가 절감될 전망이다.
무엇보다 무기도입 사업을 하나의 팀이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는 통합사업관리제(사업법 13조)를 도입키로 해 무기도입 사업의 일관성이 확보될 전망이다. 통합사업관리제는 사업 시작단계부터 끝날 때까지 계획수립에서 예산편성, 품질보증, 기술관리 등 각 기능별 전문인력을 통합해 전체 도입 과정을 관리하는 체계로 미국이나 프랑스 영국 등지에서는 이미 시행중인 제도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사업법에 따르면 방위사업청 사업관리본부 산하의 사업부에 구성될 8개 부문별 팀이 이 기능을 담당하고 각 팀은 사업규모에 따라 10~100명의 팀원으로 구성될 전망이다.
또 그 동안 해·공군의 불만 사항이었던 군별 균형발전을 위해 방위사업청의 육·해·공군 관련 보직을 같은 비율로 하고 합참의 무기소요 관련 보직도 군별로 균형 배치키로 했다. 이에 따라 그 동안 육군 위주로 편중된 의사결정 체계로 인해 발생했던 소요결정의 불합리성과 각군별 재원 배분비율의 불합리한 사전할당 관행도 근절될 것으로 국방부는 기대하고 있다.
◆ 무기비리 근절되나 = 산지사방으로 흩어진 조직을 통합한다고 무기도입 비리가 근절된다고 확신하기는 이르다. 이날 국회 국방위에서 야당의원들이 방위사업 기능이 통합됨으로써 권한집중에 따른 부패 증대 우려가 있다고 집중 성토했다. 무기도입 사업체계를 일원화해 국방 장관의 통제권에서 벗어나게 하면 부패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는 지적이다. 또 충분한 의견수렴 과정 없이 너무 성급하게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국방부는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갖가지 장치를 마련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먼저 사업청은 획득부문만 책임지고 국방부와 합참이 무기소요를 결정하기 때문에 전문성이 확보되고 상호 건강한 견제 및 예방적 정책점검이 가능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계획 및 예산입안 단계에서는 방위사업청의 독주를 막기위해 국방부와 협의체를 구성하거나 군무회의 등을 조율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업법에도 투명성 확보를 위한 정책실명제(6조) 청렴서약제(7조) 등의 견제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정책실명제는 사업추진 전단계의 의사결정 심의시 참석자의 인적사항과 발언내용 및 결정과정을 기록으로 유지하는 것이며 청렴서약제는 방위사업청 직원과 업체의 관련자에 대해 청렴서역서 제출을 의무화한 것이다. 업무의 추진절차를 법제화한 것도 무기도입의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것이다. 국방획득제도개선단 이정원 대령은 "무기도입과 업무절차를 법제화함으로써 앞으로 국민감시체계가 가능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정곤기자 kimjk@hk.co.kr
■ 방위사업청 기구도/ 사업관리·정책기획 2개의 본부로 출범
신설되는 방위사업청은 차관급 청장에 사업관리본부와 정책기획본부 등 2개 본부 체제로 출범할 전망이다. 전체 직원은 2,200~2,300명으로 예상되고 있다.
무기도입을 담당하는 핵심부서는 사업관리본부 산하의 사업부. 사업부는 8개팀으로 지휘·통제·통신·전자와 기동전력, 화력·탄약, 함정, 항공기, 정밀타격·방공·유도, 감시·정찰·정보·전자전, 신특수·화생방 등 전쟁에 활용되는 모든 무기체계를 8개 분야로 나누어 각각 통합 관리하게 된다. 여기서 무기도입과 관련한 기획·예산은 물론 협상과 계약, 도입과 전력화까지 전과정을 책임지게 된다. 정책기획본부는 실제 무기도입과 관련한 정책결정을 담당하는 정책기획 부문과 무기도입 과정을 지원하는 부문으로 나뉜다. 지원부서는 각종 계약을 관리하는 계약관리국, 품질정책을 담당하는 품질관리국 등 4개국이다.
현재 방위사업 담당 부서의 민간인 대 현역 비율은 5대5이지만 방위사업청은 6대4로 민간인 비율을 높일 예정이다. 늘어난 민간인들은 주로 정책기획본부의 정책결정 부서에 투입될 예정이며 핵심부서인 8개팀의 사업부는 전문성과 무기체계운영 경험이 풍부한 현역 군인들이 맡을 것으로 보인다.
김정곤기자
■ 국방부 "현역·군무원 처우 어쩌나" 신분 일반공무원 전환…직급·호봉 낮아질수도
방위사업청 개청을 앞두고 국방부가 직원들의 신분전환 문제로 산통을 겪고 있다.
신설 청에 근무할 현역과 군무원은 공무원으로 신분을 전환해야 하는데 전환조건에 대해 직원들이 불만을 터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신설 청으로 통합되는 8개 부서 및 기관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현역이 1,212명, 일반공무원 142명, 군무원 652명, 연구원 531명 등 2,537명으로 일반 공무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신분전환 대상이다.
문제는 동일 직급의 공무원에 비해 대략 2호봉 가량 높은 대우를 받고있는 군무원들이 공무원으로 신분을 바꾸면 처우가 지금보다 낮아진다는 것. 부이사관급 대우를 받고있는 현역 중령의 경우도 직급이 내려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팽배해지면서 반발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국방부는 최근 잇따라 군무회의를 열어 ‘신분전환자특별법’을 마련할 예정이었으나 이 같은 반발 때문에 세부방침을 확정짓지 못하고 있다.
이외에 8개 기관에 분산된 방위사업 업무를 인수인계하는 작업도 과제다. 내년 개청에 맞춰 사업인수인계가 원활치 않을 경우 사업지연 등의 차질이 예상된다. 국방부 관계자는 "개청준비단을 조기에 발족해 업무수행을 위한 충분한 시간확보에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김정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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