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리즈 대학의 북한 전문가 에이던 포스터카터(Aidan Foster-Carter)는 1970년부터 북한 르포와 논평을 홍콩의 권위 언론에 줄곧 썼다. 냉전적 틀을 벗어난 안목이 돋보인 그는 요즘도 아시아 타임스(亞洲時報)의 ‘평양 워치’ 칼럼에서 북한과 한반도를 조망하고 있다. 그의 35년 경륜은 이념과 시류를 좇아 도덕적 비평을 일삼는 여느 전문가들과 구별된다.
그를 최고급 관측통(watcher)으로 일컫기는 뭣하지만, 유럽 지식인 특유의 열린 사고와 상상력은 평가할 만하다. 그는 세상이 김정일 위원장을 그로테스크하게 그리던 시절, 오히려 북한 지도층에서 드물게 서방에 대한 식견을 지닌 이성적 인물로 보았다. 이를테면 서구 영화에 심취한 인물이 혁명세대의 낡은 의식과 행동양식을 답습할 리 없다는 분석이었다. 우리사회의 인식 변화를 되돌아보면 좋을 것이다.
포스터카터가 일찍이 내놓은 한반도 전망 가운데 특기할 것이 있다. 첫째는 통일 한국의 외교노선은 북한 김일성 주석의 세력균형적 줄타기 외교를 닮을 것이란 전망이다. 미국과 중국이 동북아의 새로운 힘의 균형을 다투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초보 줄타기 연습에 나선 듯한 모습은 시사적이다.
둘째는 북한에 친미 정권이 들어설 수도 있다고 전망한 것이다. 언뜻 황당무계하다. 그러나 한반도 현상(status quo) 유지가 가장 절실한 것이 북한과 미국이고, 북한이 고립무원으로 생존의 벼랑에 몰리면 미국이 내미는 손을 어떤 세력이든 잡을 수 있다는 가설은 마냥 소설 같은 얘기는 아니다.
어쨌든 그는 두 달 전 북한의 핵 보유선언을 논평하면서, 북한 붕괴에 대비하는 것이 한반도가 직면한 핵심 이슈라고 지적했다. 실패가 예정된 6자회담은 물론, 북핵보다 중요한 과제는 북한이 언제 어떻게 무너질지 대비하는 것이며, 어느 주변국이 북한에 개입하고 누구는 물러나 있을 것인가를 미리 합의하는 것이 급하다고 주장했다. 대한제국 붕괴 때와 같은 국익 충돌을 피하려면 타협이 긴요하다는 것이다.
실감나지 않는 먼 훗날 얘기일 수 있다. 그러나 6자회담 좌초에 이어 한반도 주변국이 갑자기 심각한 갈등으로 치달은 것을 우연한 일로만 볼 수 없다. 독도 문제와 역사 왜곡 등 오랜 분쟁 요인을 일본이 자극한 데 따른 우발적 충돌로 보기에는 한·중·일 정부의 대응이 강파르다. 저마다 국내정치에 이용하는 탓이란 지적처럼 우리 정부도 이라크 파병 등 한미 공조를 통한 북핵 정책 실패를 숨기려는 마음이 있겠지만, 갑작스레 동북아 균형자론으로 미·일과 동시에 갈등하는 것은 물정 모르는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한다. 해묵은 대만 문제가 중국과 미·일의 날선 대결로 번진 것도 의아할 것이다.
이렇게 한반도와 대만 문제가 함께 얽힌 상황은 엉뚱하지만 한국전쟁 주변의 전략적 게임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미국과 소련은 중국이 대만을 해방시켜 아시아의 강자로 떠오를 것을 우려, 한반도 전쟁을 부추겨 미국의 대만보호 명분을 강화하기로 담합 했다는 것이 뒷날 공개된 영국의 전략적 분석이다. 하버드 대 역사학자 애덤 울램 등도 같은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이런 과거에 비춰 미·일이 대만을 놓고 실익 없는 중국과의 분쟁을 도발한 것은 한반도 전략차원에서 볼 만하다. 북한 붕괴 때 개입권을 놓고 과거 미·소와 비슷한 타협을 꾀한다고 볼 수 있다. 정부도 이런 위기의식에서 독자적 북한 관리권을 내세워 미국과 갈등하는 것으로 짐작하고 싶다. 과제가 힘겨운 탓에 헤맨다고 해서 지닌 뜻마저 가볍게 볼 건 아니다. 모든 게 섣부른 상상일지 모르나, 미국과 북한이 10년 넘게 우리를 희롱하다시피 한 북핵 문제를 넘어 ‘큰 그림’을 볼 필요가 있다. 그게 포스터카터의 충고다.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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