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펜이고 펜이 곧 나다. 역사의 갈피 속에 숨겨진 감정을 찾아내 이야기를 살아있게 만드는 것. 나의 펜과 내가 지금껏 풀고 있는 숙제이다." 만화가 고우영(高羽榮) 화백이 25일 낮 12시30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67세.
고인은 만화가 어린이의 전유물이 아니라, 어른도 웃기고 울릴 수 있는 장르임을 실증한 첫 작가였다. 1972년 1월1일 ‘일간스포츠’에 연재를 시작한 ‘임꺽정’의 반역성과 민중성은 유신 치하 젊은이들에게는 문화적 충격이었다. 만화에서의 언어는 파격적이고 시적이었다. 두 번째 연재작 ‘수호지’의 첫 장을 그는 이렇게 열었다. "재미난 이야기의 노가리를 뿌려 나가겠거니와, 먼저 사두(蛇頭)를 달아, 당시의 시대 배경부터 밝혀두고 가야 쓰겄다." 고3 담임이 황금찬 시인이었고 결혼식 주례를 소설가 김동리씨가 섰음은 별 중요한 얘기는 아니지만, 만일 그가 생계 때문에 대학을 포기하는 일만 없었다면 소설가가 됐을 것이라고 추억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고인은 미술 공부를 한 적도, 도제식 수업도 받은 적이 없었으나 만화가였던 형 일영(60년 작고)의 작업을 어깨 너머로 배워, 중학생이던 부산 피란시절 ‘쥐돌이’라는 16쪽짜리 만화책을 냈고, ‘추동성’이라는 필명으로 형의 유작 ‘짱구박사’를 이어 그렸다.
고인은 만주 랴오닝성 선양의 번시(本溪)라는 곳에서 났다. 그래서인지 성정은 대륙적이었고 도전적이고 낙천적이었다. 작품 속 등장인물들이 내뱉는, 걸고 거칠고 능청스러운 ‘고우영류(流)’ 대사들도 어쩌면 작가의 태생에 뿌리를 둔 것이다. 그는 3년 전 대장암 수술 뒤 퇴원해 후배들과 골프를 치다 퍼팅 실수를 한 일이 있다고 한다. "병원에서는 여기만 나서면 만사가 행복일 것 같더니, 퍼팅 하나 놓치고 나니 세상을 다 놓친 것 같네." 말 끝에 호방한 웃음을 짓던, 아이처럼 순수하고 누구보다 따듯한 선배였다고 만화가 이상무씨는 애도했다.
고인은 ‘일지매’ ‘초한지’ ‘삼국지’ 등 연재만화와 ‘십팔사략’‘고우영의 중국만유기’ 등 수십 편의 굵직굵직한 작품들을 남겼다. 한국만화가협회 15, 16대 회장을 지냈고, 89년부터 한국일보의 이사대우 편집위원으로 시사만평 ‘고소금’을 연재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출판만화대상 공로상(98년)과 대한민국문화예술상(2001년)을 수상했다.
유족은 부인 박인희(朴仁姬·67)씨와 1녀3남. 빈소는 경기 고양시 일산병원 1호 장례식장. 발인은 27일 오전9시20분, 장례미사는 오전10시 일산 마두동성당. (031)901-4799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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