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15일 일왕의 종전 선언으로 끝난 태평양 전쟁의 전범 처리는 순 엉터리였다. 965회에 걸친 독가스탄 살포로 35만8,600여명의 중국인을 죽인, 마루타 부대(731부대)를 지휘했던 ‘인간백정’ 이시이 시로 중장은 A급 전범으로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도쿄 전범재판에서 A급 전범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교수형에 처해진 자는 육군대신 도조 히데키 등 모두 7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특정 지역에서 통상적인 전쟁 범죄를 저지른’ B·C급 전범으로 분류돼 기소 당한 148명의 한국인 군무원 가운데 교수형과 총살형에 처해진 이는 23명에 달했다. 강제 징집으로 어쩔 수 없이 전쟁터로 끌려갔던 한국인 포로 감시원들이 터무니없이 무겁고 혹독한 전쟁의 책임을 뒤집어 쓴 것이다. 이 책은 그렇게 통한 속에 사라져간 이들을 위한 진혼곡이자 "우리에게 태평양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일본 정부를 향해 보상을 요구하며 법정 투쟁을 벌이고 있는 한국인 전범 생존자들에 대한 처절한 기록이다.
저자인 문창재 전 한국일보 논설위원실장은 여전히 치유되지 않고 있는 역사의 상흔을 낱낱이 들춰낸다. 경성제대 출신으로 태국 포로수용소에 배속돼 콰이강 공사 현장에 투입됐다 싱가포르 창이 형무소에서 사형수로 26세의 짧은 삶을 마감한 조문상씨. 1942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포로수용소의 포로 감시원으로 징발돼 근무하다 징역 10년형을 선고 받고 정신병을 앓다 일본의 한 병원에 강제 수용돼 78세의 나이로 숨진 이영길씨. 1947년 쌀표 한 장과 군복 한 벌, 여비 800엔을 받고 스가모 형무소에서 풀려나와 고국으로 돌아갈 여비조차 없이 날품팔이 노동자로 살아야 했던 문태복씨….
억울하게 죽은 자들과 살아 남아 삶의 오욕을 홀로 뒤집어 쓴 자들. 외려 일본 학자들과 양심 세력으로부터 주목을 받았을 뿐, 한국 사회의 관심권 밖에 머물고 있던 이들의 이야기를 우리 자신의 손으로 처음 고발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각별하다.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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