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였으므로 진정 행복하였네라"던 시인의 말은 아무래도 위선 같다. 그것은 주기보다 받기가 더 좋은, 요컨대 미숙함의 자백이겠지만, 그렇다고 아닌 척 하자니 작은 행복의 가능성조차 포기하는 짓이라 어쩔 수 없다. 사랑은 고사하고 이해만이라도, 행복까지는 아니더라도 위안이라도 받고싶은 게 미숙한 인생들의 가난한 희망 아니던가. 임동헌의 소설 ‘별’은 통상 물질적 경쟁력 유무로 평가되는, 자본주의적 가치에 편입되지 못했거나 그 가치규범 자체에 등돌린 이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위로하는, 6편의 중·단편을 담고있다.
만년 조교로 아래 위 눈치 보느라 주눅들어 사는 판에 사기까지 당해 콧구멍만한 집을 날리고 신경성 변비에 시달리는 ‘나’. 집 나간 아내 찾으랴 강사자리 얻으랴 팍팍한 삶을 ‘뿌리까지 드러내놓고 자라는’ 풍란 키우기로 견디는 ‘나’. 대박 투자에 실패하고 몸 쓰는 일 하겠다며 택시면허 시험을 보는 ‘나’, 20년간 남들이 가라는 길만 오가다 명예퇴직한 전직 집배원, 사업에 실패하고 절망 속에 더 큰 절망을 맛보고자 하는 ‘그’….
꽃도 사람도 살기 힘든 ‘공기가 흐르지 않는 집’(‘나는 풍란을 키운다네’)과 같은 공간과, 아들 머리 위의 사과를 향해 활시위를 당겨야 하는 절박한 순간(‘별’)의 시간을 사는 이들의 이야기는 개개의 직업들에 대한 전문적이고 사실적인 묘사들로 하여 시종 처연한 흡인력을 유지한다.
하지만 ‘자전거 타는 남자’의 집배원이 "뭘 하든, 뭘 해서 입에 풀칠하든 어디 가고 싶을 때 내 발로 갈 수 있는 인생"을 선택할 때 지켜봐 주는 친구가 있고, "절망 속에서 보다 큰 절망을 맛볼 수 잇는 세계를 탐"하는 그의 여행에 동행해 "절망 속에서 어떤 희망을 건져낼 수 있거나 절망을 희망으로 환치할 수 있는 세계를 탐"하는 ‘나’(‘엔 게디의 잠 못 드는 밤’)가 있어 소설은 봄볕처럼 따듯하다.
살아남을 수 있는 생명만이 살아온다는 광야에서 과연 생명이 허락되는지를 확인하겠다며 떠난 ‘그’와 그를 기다리는 모든 이들이여, 파이팅!
최윤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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