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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실에서] 삼성전자가 무너진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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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실에서] 삼성전자가 무너진다면

입력
2005.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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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주요국가와 미국의 증시가 한때 요동쳤다. 미국 경제 침체 우려와 정보기술(IT) 선도기업의 실적 악화, 중·일 갈등 등 동북아 난기류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특히 대표적 IT기업들의 실적 악화가 직격탄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대표적 IT기업의 한가운데에 삼성전자가 자리했음은 물론이다. 삼성전자가 발표한 지난 1·4분기 실적(매출액 13조8,122억원, 영업이익 2조1,499억원, 당기순이익 1조4,984억원)은 사실 그다지 실망스러운 것은 아니다. 전분기 대비 매출은 소폭(0.6%) 늘었고 영업이익도 40% 이상 늘었다. 다만 순이익은 18% 감소했다. 환율 하락과 메모리반도체 LCD 등 일부 IT제품의 가격하락 탓이다.

그러나 시장은 삼성전자의 실적을 기대치에 못 미친 것으로 받아들였다. 사상 최대치인 4조원대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던 지난해 1분기의 실적은 물론, 예상 기대치마저 밑돌았기 때문이다. 미국의 IBM, 애플,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등의 낮은 실적 발표에 뒤이은 삼성전자의 불만족스러운 성적표는 세계 증시로선 쇼크 그 자체였다. 다양한 고부가가치 사업군을 보유한 삼성전자의 실적 부진이 전 세계 IT 업종 전망의 잣대로 인식된 것이다.

글로벌기업으로 우뚝 선 삼성전자의 영향력을 실감하며 엉뚱한 가정을 해 본다.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만약에 삼성전자가 현재의 경쟁력을 상실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세계 자동차산업 부동의 1위로 군림했던 제너럴모터스(GM)의 위기는 불패신화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계속되는 판매부진과 복지비용 가중에 회계부정 의혹이 불거지면서 GM 주식이 정크본드(투자부적격 채권) 수준으로 추락할 위기에 처했다. 고강도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지만 머지않아 도요타에 세계 1위 자리를 내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상황이다. 우리는 대우그룹 공중분해에서 이미 대마불사(大馬不死) 신화의 허구성을 뼈저리게 맛봤다.

삼성전자가 위기상황에 빠졌을 때를 가정한 한국 경제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세계 주식시장은 한동안 쇼크에 빠질 것이고 글로벌 IT업계에도 엄청난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바깥의 충격은 시간이 지나면 어떤 식으로든 수습된다. 문제는 국내다. 수출 내수 증시 가릴 것 없이 전체 경제가 와해되는 대공황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다른 대기업들의 신인도도 추락, 한국 경제의 위상이 뿌리째 흔들리는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그러나 분기 실적이 기대에 못 미쳤다고 세계 증시가 요동치는 마당에 더 나쁜 상황이 벌어질 경우를 가정해 보는 것은 국가경제를 위해 필요하다. 대표 기업 한둘이 비틀거린다고 국가경제가 절단 난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구조가 아니다. 대표 기업이 위기를 맞아도 국가경제가 크게 요동치는 일 없이 지탱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복잡한 경제이론을 접어두고 ‘강한 중소기업’에서 해답을 찾고 싶다.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강한 중소기업들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 경제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면 대기업이 한둘이 어려움을 겪는다고 해서 치명적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이 중소기업 없이 독자적으로 경쟁력을 갖춘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기업의 경쟁력은 바로 부품과 소재를 납품하는 중소 협력업체의 기술력에서 나온다. 삼성전자와 포스코가 오늘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각각 1만5,000여개 3,000여개에 달하는 협력 중소기업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강한 중소기업 없이 강한 대기업은 없다. 우리 경제가 불균형성과 불안정성을 더해가는 국제환경 속에서 도태되지 않으려면 잘 나가는 대기업들이 먼저 강한 글로벌 중소기업을 키우는 데 앞장서야 한다.

방민준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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