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질 무렵 밝은 곳으로 가려고 쉼없이 유리창에 몸을 던지는 파리가 있다. 헛된 짓이라고 아무리 말려도 소용이 없다. ‘언젠가는 유리를 통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최소한 노력해봐야 하지 않겠냐’ 던 이 고집불통 파리는 결국 유리창에 납작 붙은 채 죽고 만다. 그러자 다른 파리들은 ‘그는 파리들의 선구자요 희망의 상징’이라고 애도하며 죽은 파리의 흔적을 기념비로 남기기로 한다. 하지만 밤이 되어 돌아온 집 주인은 창문에 붙어있는 파리의 시체를 쓰윽 닦아낸다.
터키 작가 아지즈 네신(1915~1995)의 우화집 ‘당나귀는 당나귀답게’의 첫번째 이야기 ‘위대한 똥파리’의 줄거리다. 이 파리는 영웅일까, 아니면 바보 혹은 미친 놈에 불과할까. 네신은 생각할 거리를 던지며 글을 맺고 있다. "어떤 길을 택할 것인지는 파리들 자신이 알아서 할 일이다. 하지만 진실은 있다. 어둠 속에 죽치고 앉아 있는 파리의 기념비가 세워졌다는 얘기는 역사 그 어디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으니까."
이 책에 실린 열 네 편의 우화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세상의 부조리를 날카롭게 풍자하고 있다. ‘위대한 똥파리’ 처럼 가슴 찡한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정신이 번쩍 들게 내려치는 죽비 같은 이야기도 있다. 기발한 상상과 후련한 웃음, 기막힌 반전으로 엮은 짧은 이야기 한 편 한 편이 결코 가볍지 않다. 송곳처럼 예리한 풍자를 부드러운 위트로 감싸는 작가의 솜씨는 거칠게 악을 쓰며 떠드는 소리보다 더 강력하게 마음을 파고든다.
네신은 터키인들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작가이자 대표적인 지성이다. 그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가슴에 새 세상의 꿈을 심어주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국내 번역된 그의 다른 책으로는 ‘제이넵의 비밀편지’가 있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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