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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돈 내고 하는 학습지 교사

입력
2005.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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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대상의 유명 학습지 회사 교사인 김모(33)씨는 이번 달에도 여고 동창생 3명을 소위 ‘가라(가짜)회원’으로 등록시켰다. 교사 1인당 매달 150과목의 강의를 맡도록 할당돼 있지만 회원 수를 채우지 못해 요금을 대신 내주는 조건으로 친구들의 명의를 빌린 것이다. 김씨는 "회원 수를 채우지 못하면 해고하겠다는 등 위협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 해지(解止)회원의 회비까지 교사가 월급에서 물어줘야 한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그렇게 가짜회원까지 동원하느라 김씨가 진 빚은 1년 반 동안 1,400만원에 달했다.

전국학습지노동조합과 재능교육교사노동조합은 22일 서울 종로구 종각역 앞에서 학습지 회사의 열악한 근무환경과 부당한 영업방식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비정규직 차별철폐와 노동3권 보장을 촉구했다.

이들은 회견에서 "학습지 회사들이 매월 초 사업국 산하 팀별로 목표를 정해 신규회원 모집과 회원 탈퇴방지에 대한 실적을 강요하고, 탈퇴회원 회비를 대납케 하는 등 부당하고 강압적인 업무를 강요하고 있다"며 "실적이 없을 경우 토요일에 강제 근무를 시키거나 심하면 감금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학습지 교사는 회사와 고용계약이 아닌 위탁계약을 맺고 일하는 특수고용직으로 개인사업자의 성격과 노동자의 성격을 동시에 갖고 있어 근로기준법상 노동3권과 4대 보험 등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기본급이나 수당은 전혀 없고, 과목당 3만원가량의 회원비 중 수수료 개념으로 받는 35%가 수입의 전부다.

노조측에 따르면, G사 J사 N사 등 국내 유명 학습지 회사는 매월 15일을 전후해 다음달 탈퇴예정 회원을 파악하면서 총국·지국·팀별로 전국 순위를 집계한다. 학부모로부터 탈퇴의사를 받게 될 경우 그 책임을 온전히 교사에게 지워 결국 교사가 회비를 대납하는 경우가 다반사며, 회원들로부터 회비가 체납되는 경우도 교사가 대납하도록 강요받는다는 것.

부산에서 학습지 교사로 일하다 최근 사직한 최모(26·여)씨는 "회사측이 계약 해지한 회원들의 회비를 대납하라며 사채 쓰는 법과 마이너스 통장 만드는 법까지 ‘강의’를 했다"며 "마이너스 통장과 사채로 끌어다 쓴 돈이 1년 만에 1,000만원이 넘었다"고 말했다.

노조측은 "교사들이 이에 맞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회비 대납을 거부하면 돌아오는 것은 계약해지에 의한 강제 해고뿐"이라며 "학습지 회사가 이익창출을 위해 교사를 자신의 직원 부리듯 하면서도 ‘학습지 교사는 개인사업자’라는 이유로 교사들의 노동3권 보장에는 눈을 감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또 지난해 4월 사망한 학습지 교사 이모(당시 28세·여)씨의 죽음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노동자가 아니므로 산재적용 불가능하다’는 결정을 받았지만, "이씨 사망 후 업무 인수인계 과정에서 이씨가 맡은 203과목 중 134개가 유령회원이었고 이로 인해 1,500만원가량의 사채를 쓴 것으로 확인된 만큼 이는 명백히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한 사망"이라며 진상조사와 사측의 사과 및 재발방지 약속, 유족 보상 등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학습지 회사측은 "노조의 일방적 주장일 뿐 회사 차원에서 그런 부당행위를 한 적이 없다"며 "현재 학습지 노조가 민사소송을 건 상태이므로 소송을 통해 명확한 사실관계가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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