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삶과 죽음을 하나로 보지 않는다. 보통 삶에는 집착하지만 죽음은 거부한다. 올해 아흔 넷인 일본의 저명한 내과의사 히노하라 시게아키씨가 평생 겪어온 환자들의 죽음. 이 책은 이러한 체험을 통해 그가 터득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다.
시게아키씨가 멀게만 느껴졌던 죽음을 최초로 접한 것은 도쿄대학 의학부를 마치고 같은 대학 내과 발령을 받은 직후였다. 방직공장에서 일하던 열여섯 살 소녀가 그의 첫 환자였다. 결핵성 복막염을 앓고 있던 소녀는 심한 고열과 복통에 시달렸고 이상하게도 일요일마다 상태가 악화했다. 고통에 시달리던 소녀가 일요일마다 근무하지 않는 그를 섭섭하게 여긴다는 말을 동료로부터 전해 듣고 그때부터 일요일 근무를 하기 시작한다. 의사로서 환자와의 첫 관계는 이렇게 시작됐다.
소녀의 상태는 점점 악화했고 3개월이 지난 어느 일요일, 고통의 시달림에 지친 소녀가 "선생님, 오랫동안 폐를 많이 끼쳤습니다. 일요일에도 선생님을 나오게 해서 죄송해요. 이제는 더 이상 살 수 없을 것 같아요. 엄마한테 걱정만 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전해주세요"라고 부탁한다. 죽음을 받아들인 10대 소녀의 마지막 감사인사에 당황한 그는 "이제 곧 나을 거야. 죽는다는 말 하지 말고 기운내"라고 말했으나 잠시 후 소녀는 두 세 번 큰 호흡을 하더니 곧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는 소녀의 아름다운 작별인사에 "안심하고 가라"며 환자의 손을 꼭 잡아주지 못한 아쉬움이 마음 한 켠에 늘 남아 있다고 했다.
"가족 중에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아파 다행"이라던 대사 부인과 서른다섯 한창 때에 죽으면서도 "남들보다 세배나 열심히 살아 백 살을 넘게 산 것이나 다름없다"고 여유있게 말하던 고고학도, 자신이 만든 노래처럼 자유롭게 살다 간 작곡가…그와 죽음을 함께 나눈 환자는 600명이 넘는다. 책에는 그 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20명과 부모님이 죽음을 맞는 고결한 모습이 담겼다.
그가 소개하는 환자들의 이야기는 죽음이야말로 삶의 마지막 모습임을 말해준다. 최근에 ‘임상적 죽음’이나 ‘말기 환자의 케어’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지만 이 책은 진실하게 인생을 살아온 환자들이 마지막으로 삶을 닫으며 또 다른 세계로 떠나는 그 순간을 이야기하고 있다. 삶과 죽음이 과연 무엇인지, 그러므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내용의 대부분은 저자가 의학 월간지에 2년간 기고했던 원고를 다듬은 것이다. 1983년 출간한 초판을 이번에 활자와 판형을 바꿔 재출간하게 됐다.
조윤정기자 yjch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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