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이름난 저술가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65)는 여행에 관해, 아니 여행을 소개하는 대중매체의 난리법석 떨기에 대해 한마디 한다. ‘여행을 떠나는 최초의 목적을 일상성의 탈출이라고 한다면 여행의 패턴화(일상화)는 최악의 퇴행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행선지에 있는 유명 여관의 소문난 주인아주머니가 선보이는 특선요리를 소개하고, 그 재료가 얼마나 좋고 또 요리사의 실력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자랑하고, 리포터는 시식을 하면서 얼마나 맛있는지 모른다고 야단을 떠는 등 모든 것이 패턴화되어 있다. 아주 약간의 진기함에만 의존해서 완전히 패턴화된 장면을 연기할 뿐이다. 이것이 퇴폐가 아니고 무엇이랴.’다치바나처럼 역마살 낀 사람이나 할 소리라고 비웃어 넘기기에 그의 지적은 가슴 따끔하게 하는 구석이 있다. 그의 지론은 여행이 일상성에서 탈피하는 것이므로, 그 과정에서 얻은 모든 자극은 색다른 것이고 따라서 그 경험이 여행자의 개성과 지·정·의 시스템에 독창적으로 각인된다는 것이다. 공장 물건 찍어내기식 여행이 마뜩하지 않은 그의 여행론은 한마디로 ‘존재의 근본을 만드는 것은 책이 아니라 여행이다.’
1970년대 초반부터 최근까지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잡지 이곳 저곳에 기고한 여행기를 모은 이 책은 여행의 시기와 종류에 따라, 기고한 매체의 성격에 따라 글의 색깔이 제 각각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소믈리에(와인 전문가) 두 사람의 뒤를 따라 다니며 프랑스 포도주 명산지를 탐방한 이야기부터, 80년대 초반 일본에서 뉴욕(사진)을 스케치한 최고의 글이라고 자찬하는 체험기와 중동 분쟁의 현장에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를 해부하는 이야기까지 다양하다. 여행비를 지원 받아 나선 경우가 다수지만 그가 즐기는 여행은 스케줄 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때로 배를 곯아가며, 볼 것은 봐야 겠다는 고집으로 다니는 여행이다.
거의 무일푼 신세로 이라크 니네베 유적을 보러 나섰다가 잘 통하지 않는 아랍어에 손짓발짓 섞어가며 길을 묻는 그를 짐 자전거에 태워 유적 내부 안내까지 해주고, 끝난 뒤에 집으로 데려가 밥까지 먹여준 이라크 농민의 호의를 만나거나, 이스라엘 정부 안내인을 따라 예루살렘 등지를 다닐 때와 혼자 팔레스타인 호텔에 머물며 여행할 때 중동문제가 전혀 다르게 보이는 경험을 한 것도 그런 여행을 통해서다. 일본 책 제목 그대로인 ‘사색기행’은 좀 과분하지만, 진정한 여행이란 맨몸으로 세상과 부딪치는 것이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김범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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