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깨끗한 지하수 만들기’에 팔을 걷어부쳤다. 지난해 11월 문제가 됐던 녹사평역 기름유출사건 이후 지하수 오염방지책 마련이 현안으로 떠오른 데다, 비상 식수원으로서 지하수의 중요성도 날로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지하수 오염대책이라고는 관정을 폐쇄해 사용을 중지시키는 것이 고작이었다. 서울시는 올해부터 지하수를 인공적으로 정화·복원하는 ‘오염원 발본색원’ 대책을 펴기로 했다.
◆ "3~4년이면 인공정화 효과 나타나"
서울시내 지하수 관정은 모두 1만4,000여개. 이중 1,294개는 민방위비상급수 관정으로 전시나 지진, 홍수 등 천재지변시 식수용으로 쓰인다. 그러나 이런 관정들의 수질악화 방지책으로는 소독 혹은 정수기 설치가 아니면 폐공시켜 자연정화를 유도하는 정도였다. 이런 식으로 매년 폐공되는 관정만 서울시내 700여 곳에 달한다.
서울시는 우선 기름유출로 오염된 관정 복구에 집중하겠다는 계획이다. 기름이 스며든 지하수에서 발암물질인 벤젠, 신경계를 마비시키는 톨루엔 등이 검출되고 이는 상수도까지 오염시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 녹사평역 인근 관정에서는 생활용수 기준치의 1,800배가 넘는 벤젠이 스며든 지하수가 발견되기도 했다. 기름을 유출해 적발된 주유소등 유류취급시설도 2001년 14곳에서 지난해 26곳으로 증가했다.
서울시는 10여 년간 식수원으로 쓰이다 벤젠계 오염물질이 과다하게 검출돼 지난해 폐공된 송파구 가락동의 한 관정을 인공적으로 정화·복원하기로 했다.
6월부터 이 관정에 기름을 분해하는 박테리아를 투입하고 오염된 지하수는 양수펌프로 퍼내 오염 이전의 상태로 복원하겠다는 것이다.
송웅기 서울시 수질과장은 "지하수가 자연정화되는 데는 10~20년이 걸리지만 인공정화로 3~4년 만에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며 "유엔이 우리나라를 ‘미래의 물부족 국가’로 지정한 만큼 지금부터라도 지하수 정화의 노하우를 쌓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예산 낭비냐 장기 투자냐" 논란도
그러나 막대한 비용은 지하수 인공정화사업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2001년 시작된 녹사평역 일대 지하수 관정의 복원·정화에는 지난해까지 이미 12억원 이상이 투입됐다. 가락동 관정의 복원사업에도 연 1억원 이상, 총 3억원 가량이 투입된다.
2003년 개정된 ‘지하수의 수질보전 등에 관한 규칙’은 자치구를 지하수 오염방지대책의 주체로 명시했지만 자치구들은 예산부족으로 사실상 엄두도 못내고 있다. 송파구 환경과 관계자는 "재정이 비교적 넉넉한 편인 우리 구의 관정 관리 예산도 1년에 100만원에 불과하다"며 "당장 가시적 성과가 나타나지도 않는 지하수 정화사업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할 수 있는 자치구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지표수에만 의존했던 취수정책을 지하수로 다변화한다는 점에서 서울시의 시도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윤성태(43) 고려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는 "먹는물의 경우 지하수가 지표수보다 훨씬 깨끗하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라며 "지표수 개발에 투자하는 비용의 10분의 1만 지하수에 투자하더라도 깨끗하고 풍부한 수자원을 확보할 수 있는 만큼 미래를 위한 투자로 보고 지하수 정화사업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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