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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코끼리는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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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코끼리는 외롭다

입력
2005.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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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가 처음으로 우리 땅을 밟은 것은 1411년 2월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일본 막부가 조선 태종의 환심을 사기 위해 이국적 동물을 선물했다. 큰 구경거리가 됐던 코끼리는 머지않아 하루에 콩 너댓 말을 먹어 치우는 골칫덩어리 취급을 받게 됐다. 나뭇잎 풀 과실 등을 즐겨 먹는 코끼리는 하루에 300kg 정도를 먹는 대식가다. 게다가 이 코끼리는 사육사를 코로 말아 죽였고 이우라는 관리마저 밟아 죽였다. 관리가 코끼리의 형상을 비웃으며 마구 찔러대기까지 하니, 코끼리가 분노를 참지 못한 것이다.

■ 사고 후 기상천외한 동물재판이 열렸다. 코끼리가 임금의 애완동물도 아닐 뿐더러 막대한 콩을 소비하니, 중국의 예를 따라 유배형을 내려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다. 태종은 웃으며 코끼리를 전라도로 유배했다. 그러나 전라도도 코끼리 수발에 어려움을 호소함에 따라, 경상도와 충청도가 돌아가며 먹였다. 그 과정에 다시 코끼리가 한 사람의 희생자를 냈다. 태종은 마침내 초원에서 방목하게 했으나, 코끼리는 낯설고 척박한 환경 속에 일생을 마쳤다.

■ 우리는 개화기 이후 동물원이나 서커스에서 코끼리를 다시 만나게 된다. 이제 코끼리는 값비싼 ‘상아(象牙)’나 대학을 비유하는 ‘상아탑’이란 긍정적 이미지로도 친숙해져 있다. 원래 ‘상아탑’은 프랑스 비평가 생트뵈브가 낭만파 시인의 태도를 비평한 데서 온 말이라고 한다. 육지에 사는 가장 큰 동물인 코끼리는 원래 산림이나 사바나에서 군집생활을 한다. 자연 속에서 한 마리의 암컷이 통솔하는 집단이 60마리 이상이다.

■ 20일 서울 어린이대공원에서 ‘코끼리 쇼’에 출연하려던 코끼리 6마리가 집단탈출해서 주택가에서 4시간 동안 소동을 벌였다. 주민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가정집 정원에서 자연에 대한 향수라도 느끼려는 듯한 코끼리의 몸부림도 서글퍼 보였다. 던져 주는 과자를 무심한 듯 주워 먹는 동물원 코끼리를 볼 때, 서커스에서 어울리지 않게 재롱을 부리는 녀석들을 볼 때도, 그들의 거구가 더욱 외로워 보인다. 포경금지로 바다의 거물 고래는 보호받는데, 육지에 산다는 이유로 도시 코끼리는 너무 천대받는 것이 아닌가. 좀더 넉넉한 환경을 베풀었으면 하는 생각이 스치는 것이다.

박래부 수석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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