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관련 법안 처리를 놓고 노사가 격렬하게 대립하고, 시민단체도 양측으로 갈려 지지 성명을 발표하는 등 이를 둘러싼 갈등이 확산되고 있다.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과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은 2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후 단식 연좌농성에 돌입했다. 양 노총 위원장이 공동으로 단식에 들어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두 사람은 기자회견에서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시한 기간제 근로자의 사용사유 제한,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 명문화 등을 수용해 비정규직 관련 법안을 4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라"며 "만일 정부가 인권위의 가이드라인을 무시하고 사회적인 합의 없이 정부 법안을 강경 처리한다면 총파업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이에 맞서 박용성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이수영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김재철 한국무역협회 회장, 김용구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회장, 조건호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등 경제 5단체장은 롯데호텔에서 긴급 회동을 갖고 "정치권과 정부가 노동계의 주장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며 정부의 비정규직 관련 법안을 원안 그대로 4월 중 처리할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인권위가 인권적 잣대로만 비정규직 문제를 판단해 기간제 사유제한, 동일노동 동일임금 등 노동계 주장을 여과 없이 수용하는 바람에 힘들게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던 노사정간 논의에 혼란만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전국교수노조,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학술단체협의회 등 교수단체들은 이날 성명을 통해 "정부가 보호법안이라며 제출한 비정규직 관련 법안은 사실상 차별유지, 비정규직 확대법안"이라며 "이 법안이 통과되면 비정규직 차별 해소효과는 전혀 없고 대다수 정규직 노동자가 곧바로 비정규직이 될 것"이라고 정부를 성토했다.
반면 기독교사회책임, 시민과 함께 변호사들 등 4개 보수단체는 기자회견을 갖고 "노동계가 인권위의 의견표명을 빌미로 비정규직 사용 규제를 강화할 것을 요구하며 단체행동을 하려고 하는 데 이는 무책임하고 이기주의적인 행태"라고 비판했다.
송두영기자 dysong@hk.co.kr
유병률기자 bryu@hk.co.kr
■ 어떻게 될까/ 법안 6월 국회로 넘길 듯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노사정이 진행하고 있는 비정규직 관련 법안 협상이 어떤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는 지가 관심이다. 현재로서는 ‘정부안 강행처리’나 ‘협상 조기 타결’ 등 극단적인 시나리오보다는 ‘6월 국회로 연기’라는 어정쩡한 선택이 유력해보인다.
정부는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금지와 기간제 근로자 사용기한의 3년 제한을 골자로 한 정부안을 지난해 11월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노동계의 반발로 법안처리에 실패, 이번 국회로 넘길 수밖에 없었다. 노동계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 명시와 기간제 남용방지를 위한 사용사유 제한을 주장하면서 정부의 4월 처리방침에 강력히 반발했다. 반면 사측은 법안을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4월 처리를 지지했다. 그런데 인권위가 이 법안에 대해 친노(親勞)적인 의견을 표명하면서 노동계는 "인권위의 의견을 반영한 내용으로 법안을 바꿔 4월에 처리하자"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이 때문에 환노위에서의 노사정 논의는 더욱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이들은 24일 다시 모여 의견을 조율키로 했으나 전망은 불투명하다.
일단 노사정 모두에게 가장 쉬운 선택은 4월 처리를 포기하고 6월 국회에서 이를 다시 논의되는 것이다. 4월 처리는 노사정 모두가 주장하고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원안 대로 입법화-인권위 의견 반영해 입법화’라는 입장을 강조하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에 실현은 힘들다. 어차피 팽팽히 대립해 당장 타협이 불가능하다면 정부와 사측도 4월 처리를 고집해 모든 책임을 질 이유가 없고, 노동계도 정부와 사측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을 계속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이렇게 될 경우 노동계보다는 정부와 사측의 부담이 더 커진다는 점이다. 5월부터 시작될 춘투(春鬪)와 비정규직 관련 법안 문제가 맞물리면 상황이 불리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시나리오는 정부안대로 강행 처리다. 정부로서는 이 문제가 국제 신인도와 연결돼 있어 계속 미룰 수가 없는 입장이다. 또 하반기에는 노사관계 선진화방안(로드맵)을 처리해야 해 비정규직 관련 법안 문제로 계속 발목이 잡히면 더욱 어려운 상황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강행 처리 시 국회 내에서는 민주노동당의 강력한 저항이, 국회 밖에서는 노동계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민주노총은 이 같은 사태가 발생 경우 총파업에 돌입한다는 행동지침을 마련해 놓았다. 정부가 뻔히 보이는 고통의 길을 갈 이유는 별로 없어 보인다.
노사정이 합의점을 찾아 극적으로 4월 국회에서 법안이 통과 되는 상황도 생각할 수 있다. 노사정 모두가 양보해 중간점을 찾는 것이다. 정병석 노동부 차관은 이와 관련, "노사와 빅딜을 통해 일괄 타결할 가능성도 있다"고 낙관론을 펴고 있다. 가장 바람직하고 노사정 모두가 승자가 될 수 있는 시나리오지만 이 역시 가능성이 그다지 높아보이지는 않는다. 타협을 하기는 서로의 의견이 너무 다르고, 특히 노사의 경우 강경파로부터 잘못된 야합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송두영기자 dy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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