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9월 과학기술부의 업무를 과학기술 혁신 정책의 수립, 총괄, 조정·평가로 확대하기 위하여 과학기술부 장관을 부총리로 격상하고 과기부에 과학기술혁신본부를 신설했다. 과학기술혁신본부가 한국을 세계 8대 기술 강국으로 만들 수 있고 과학기술 장기 정책 수립 및 수행에 핵심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로, 혁신 정책의 수립, 총괄, 평가를 제대로 하려면 과학 기술과 연구에 정통한 전문가 손에 맡겨야 한다. 이러한 전문가의 양성을 위해 공무원 조직의 관례처럼 되어 있는 순환보직제를 지양해야 하며 민간 전문가를 대폭 기용하여야 한다. 처음에는 본부장도 민간 전문가를 기용한다고 하였는데 그렇게 안되었다. 짧은 시간에 출범시키다 보니 과기부를 비롯한 여러 부의 수평 인사 이동으로 말미암아 관료 중심적인 기구가 되고 말았다.
앞으로 20년 이상 장기적으로 과학기술 전문가를 기용하여야 한다. 지금이라도 공무원 중 과학기술 전문가에 일을 맡기면 된다. 공무원의 연공서열로 인해 적재적소의 인재 등용 및 전문가 양성이 잘 안 되고 있다.
행정자치부에서 시행 예정인 팀 제도를 과학기술혁신본부에서 먼저 시행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위원회 왕국이다. 위원회 운영비만 연간 500억 원 이상이 된다. 공무원들이 잘 모르면 위원회를 만들고 위원회 결정에 따라 집행하고 나중에 잘못되면 위원회로 책임을 돌리는 것 같다. 문제는 정책 수행 중에 여러 문제점을 빨리 파악하고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위원회는 상시 집행 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도와줄 수가 없게 된다. 그래서 전문가가 필요한 것이다.
둘째로, 부처 이기주의를 과감하게 배격해야 한다. 산자부, 정통부, 과기부 등에서 추천한 민간 인사로 4명의 심의관이 나눠 먹기 식으로 기용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는 국가를 위한 정책 수립 및 조정이 불가능해지고 혁신본부가 혁신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셋째로, 혁신본부와 다른 기관의 업무 중복성을 최소화하여야 한다. 아울러 혁신본부 출범에 따른 관련 기관의 업무 분야 및 임무의 재조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1999년에 발족된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의 업무도 과학기술 진흥을 위한 주요 정책 및 계획을 수립, 조정하고 부처별로 추진하고 있는 연구 개발 사업의 사전 조정과 예산의 효율적 운영에 관한 사항들을 심의하는 것으로 돼 있다. 뚜렷하게 중복 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평가원은 과기부 관련 과제 관리 및 개별 과제 평가를 한국과학재단으로 이관하고 프로그램 평가만 하는 것으로 되어 있어 과연 원래 규모로 유지해야 하는지 의문시된다. 산자부의 산업정책연구원, 정통부의 정보통신정책연구원, 과기부의 과학기술정책연구원, 환경부의 환경정책평가원 등은 각 부별 과학기술 정책, 연구개발비 조정 등 혁신본부와 중복되는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 연구원들의 정책 수립, 총괄 업무를 통합하여 과학기술혁신본부 직속 연구원을 만들어 효율적으로 국가 기술 정책의 수립, 총괄, 조정을 잘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넷째로, 혁신 당사자가 합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혁신을 해야 한다. 혁신 당사자들의 의견과 개선 요구 사항을 적극적으로 파악하고 정책에 반영하여 혁신본부가 또 하나의 옥상옥으로 군림한다는 이미지를 갖지 않도록 해야 한다. 특히 수요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정책과 과학기술을 개발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회의원이 각 지역구에서 원하는 과학기술을 찾아내고 혁신본부에서 총괄 조정하여 수요자에게 가져다 주면 좋을 것이다.
혁신이라는 것은 본질을 파악하고 이를 이루도록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다. 새로운 기구와 법령, 제도도 중요하지만 혁신 주체와 대상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있어야 한다. 과학기술의 본질은 창의와 자율성이다.
우성일 KAIST 생명화학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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