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유력 재력가로 행세하면서 벤처기업 등으로부터 해외자본 투자를 유치해 주겠다고 속여 거액을 가로채고, 고급 사교클럽에 가입해 유명 대학 여교수와 사기 결혼까지 한 40대 유부남 재미동포가 경찰에 검거됐다. 경찰이 탐문 수사 끝에 검거한 재미교포 토머스 리(46·전과 5범)씨의 사기행각은 한편의 영화를 연상케 할 정도로 교묘하고도 치밀했다.
이씨는 1994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뒤 미국에서 여권위조 등의 범죄를 저질러 형사 처벌됐다가 2000년부터 국내에 체류하며 사기행각을 벌이기 시작했다. 지난해 초 서울에 유령 펀드회사를 차린 뒤 자신을 미국 보스턴 소재 유명 펀드회사의 아시아지역 총책임자라고 속이며 국내 벤처기업과 회계법인 관계자 및 부동산 임대업자 등을 접촉했다.
이씨는 만나는 기업인들에게 "동생이 내가 근무하는 펀드회사 대주주의 사위인데 제주 골프텔 건설, 미군 동두천기지와 오대산 인근 부지 개발, 기업 인수합병 등을 추진하기 위해 해외자본 투자를 유치하려 한다"고 속였다. 이어 그는 작년 1월과 10월 투자 및 신기술사업 금융전문업체와 부동산 개발업체를 주식회사 형태로 각각 설립한 뒤 해외자본 유치 수수료 등의 명목으로 모 벤처회사 대표 이모(35)씨 등 6명으로부터 11억원을 받아 챙겼다.
그는 이 과정에서 동생의 미국인 부인 이름으로 미국 은행에 계좌를 개설한 뒤 투자자들에게 "미국 본사 계좌를 알려 줄 테니 직접 송금하라"고 속이고 , 1억5,000만달러가 들어 있는 미국 은행 잔고 증명서와 560만달러 상당의 국내 은행 잔고증명서를 위조해 투자자들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이씨는 이렇게 챙긴 돈으로 벤츠 등 고급 외제승용차를 몰고 다니면서 국내 유명 대학원 출신 직원 10여명을 고용해 서울 아셈타워 외국인 전용동에 호화 사무실을 차리는 등 유력 재력가로 변신했다.
이후 이씨는 전직 고위관료와 대학교수 등이 참여하는 고급 사교클럽에 가입해 지난달 초에는 10년 연하의 유명 대학 여교수와 사기 결혼을 하기도 했다. 유부남인 그는 외국인의 결혼 여부 확인이 어렵다는 점을 악용해 관련 서류에 자신의 성과 이름 순서를 바꿔 써넣는 수법으로 혼인신고까지 마쳤다.
경찰 관계자는 "이씨는 182㎝의 훤칠한 키에 호남형으로 생긴 데다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해 결혼한 여교수는 물론 측근들도 4~5년간 이씨의 실체를 전혀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서울경찰청은 21일 이씨에 대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신기해기자 shink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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