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미국 대선에서 카터 후보가 선풍을 일으켰을 때다. 부도덕한 베트남 개입과 워터게이트 사건의 악몽에 시달린 미국사회는 카터의 도덕성 회복 구호와 순진무구한 미소에 매료됐다. 그는 정치외교뿐 아니라 사회와 개인이 전통적 가치와 윤리를 되찾을 것을 외쳤다. 어느 언론인이 짓궂게 물었다. "도덕주의를 앞세운 당신은 외간 여자에게 음심을 품은 적이 없느냐." 망설이던 카터는 "더러 욕정을 느꼈지만 불륜은 없었다"고 진솔하게 답했다. 그러자 신문 만평은 자유의 여신상 앞에서 침 흘리는 카터를 그렸고, 찬반 논란이 이어졌다.
■ 논쟁은 ‘마음으로도 간음하지 말라’는 종교적 윤리와, 대통령의 거짓말을 중죄로 심판한 사회적 도덕률 가운데 어느 쪽을 잣대로 삼을 것인가를 다툰 것이다. 그만큼 도덕성 회복이 절실한 상황에서 카터 스스로 기준을 한껏 높인 것이 함정이 됐다. 그러나 그 뒤 클린턴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벌인 추잡한 섹스 행각에 미국사회가 보인 반응은 세월의 간격보다 차이가 크다. 정치세력은 그의 부도덕성을 집요하게 추궁했지만, 대중은 대통령의 사생활 스캔들에 뜻밖에 관대했다.
■ 그래도 미국이 정치 지도자의 도덕성에 엄격한 것은 어찌 보면 위선적이다. 사회전체 성윤리 수준에 걸맞지 않게 비친다. 배꼽 아래는 별로 시비하지 않는 우리와 일본, 유럽 쪽이 오히려 진솔하다. 프랑스는 미테랑 대통령에게 숨겨 둔 딸이 있다고 특종 보도한 신문이 ‘저급한 영미식 저널리즘’이라고 언론과 사회의 지탄을 받았을 정도다. 과연 프랑스다 싶지만, 우리 통념으로 이해하기 어렵기도 하다. 이처럼 우리는 정치지도자의 성윤리를 재는 잣대가 분명하지 않다. 여성들의 눈이 매서워졌지만 사생활 존중의식 또한 높아졌다.
■ 이런 사회에 도덕적 명망 높은 가톨릭 신자인 김대중 대통령에게 불륜관계로 낳은 딸이 있다는 얘기는 더러 당혹스러우면서 흥미로운 논란거리다. 사회 풍속이 달랐던 DJ의 40대 시절 스캔들은 각자 취향대로 평가할 것이다. 다만 홀아비였던 박정희 대통령의 말년 사생활을 놓고 온갖 욕된 말을 하는 이들이 여러모로 비교되는 DJ의 스캔들에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눈길이 간다. 그런 비교조차 부당하다고 반발하겠지만, 이미 고인이거나 팔순을 넘긴 두 사람의 과거 행실은 지금 별 의미가 없다. 그걸 논란하는 우리의 눈과 잣대가 늘 똑바른 지가 중요할 따름이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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