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시프 스탈린(1879~1953·사진)이 러시아에서 부활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앞장서 그에 대한 재평가 작업에 나서고 있다. ‘강력한 러시아’를 기치로 스스로의 권력을 강화하면서 집권 29년 동안 3,000여만 명을 학살하거나 유배 보낸 독재자를 강력한 지도자로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내달 9일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제2차 세계대전 승전 60주년 기념행사는 푸틴 대통령이 주도하는 스탈린 복원운동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나치독일의 수장 히틀러로부터 항복을 받아낸 역사를 스탈린의 공적으로 돌리고 명예회복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사전 정지작업으로 이미 지난해 모스크바의 알렉산드로프스키 공원에 있는 ‘볼고그라드’라는 명문(銘文)이 새겨진 2차 대전 기념비를 ‘스탈린그라드’로 바꿔버렸다. 이 도시는 뜻을 갖고 있는 러시아 남부에 위치한 도시로 1943년 스탈린이 나치 독일군을 맞아 대승을 거둔 곳으로 61년 스탈린 격화 운동이 벌어지면서 ‘스탈린그라드’에서 ‘볼고그라드’로 개명된 바 있다.
스탈린의 재격상은 56년 후계자인 니키타 흐루시초프 전 서기장이 그를 비판하고 격하운동을 벌인지 50년 만의 일이다. 당시 스탈린의 시신은 레닌 묘에서 크렘린 벽 쪽에 있는 일반 묘로 이장되는 수모를 겪었다. 85년부터 개혁·개방을 내건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공산당 서기장과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이 연이어 집권하는 동안에는 스탈린주의의 잔재 청산작업이 벌어졌다. 91년 소련 붕괴 이후에는 동상마저 모두 철거돼 러시아에서 그의 흔적마저 없어질 태세였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은 2001년 소련 ‘국가’(國歌)와 2002년 ‘붉은 별’ 등 옛 소련의 상징물을 복원시키며 러시아인을 상대로 스탈린의 향수를 이끌어 냈다. 때문에 국내외의 비판자들이 ‘네오 스탈린주의자’라고 비난을 퍼부었지만, 푸틴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올해에는 모스크바 남서부 오률시(市)가 스탈린 박물관 재건과 스탈린 이름을 딴 거리를 부활하겠다고 공언하고 ‘볼고그라드’ 등에서도 스탈린 동상 건립이 추진되는 등 재평가 붐은 러시아 전역으로 확산하고 있다. BBC방송은 "러시아 국민들이 여전히 경제적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강한 리더십을 가진 스탈린에 대한 향수가 제기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푸틴 대통령은 특히 이번 승전기념 행사를 자신의 영향력 회복의 기회로 삼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등 50여개 국 지도자들을 초청한 세기의 행사를 주재하면서 러시아가 아직도 초강국의 반열에 있다는 점을 인식시키겠다는 의도이다. 푸틴 대통령은 현재 중앙집권화정책으로 인해 민주주의 후퇴에 대한 비난 여론과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옛 동맹국들의 이탈로 외교적 궁지에 몰려 있다.
독일에서도 마침 히틀러를 인간적으로 묘사한 영화 ‘몰락’이 인기를 끄는 등 나치 향수가 고개를 들고 있다. 나치 항복 60주년을 맞은 유럽의 각종 행사들이 결국은 전체주의 이념의 부활을 알리는 역사왜곡 잔치로 끝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것이 이런 이유에서다.
고성호기자 sung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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