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이 증권집단소송 대상 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과거 분식 회계 사실을 자진 공시했다. 향후 2년간 집단소송 적용 유예로 과거 분식 행위를 자발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데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현재 금융 당국의 감리가 진행중인 대한항공은 자진 신고에 따른 감경 조치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도 유사 사례는 적지 않을 전망이어서 감리 면제(혹은 감경) 조치에 따른 후폭풍이 간단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한항공은 21일 2003회계년도 대차대조표 상 재고자산 항목 중 하나인 ‘미착품 잔액’(주문 후 미 도착 항공기 부품 잔액) 888억원 중 719억8,700만원을 과대 계상한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대한항공은 이중 477억원은 2004회계년도 사업보고서에 수정했고 이후 추가 확인을 거쳐 나머지 243억원은 올 1·4분기 보고서에 전액 해소할 예정이라고 20일 자진 공시했다. 집단소송제 2년 유예에 따라 금융 당국이 과거 분식을 자진 수정하면 2006년 말까지 감리를 실시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뒤 과거 분식 사실을 고백한 것은 대한항공이 처음이다.
대한항공측은 "항공기 부품 구매에 대한 시스템이 1978년에 만들어진 데다 관리·구매·회계 시스템 등 3분야로 분리돼 운영되는 바람에 회계상 누계 오차가 발생했다"며 "집단소송에 대비해 회계 정리를 하는 과정에서 누락 사실이 나와 자진 신고한 것으로 고의적인 분식 회계는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대한항공이 굳이 자진 공시 형식으로 회계 분식 사실을 실토한 것은 감경조치를 받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금융 당국은 과거 분식을 자진 해소할 경우 향후 2년간 감리를 면제해 줄 뿐 아니라, 시행일(3월10일) 이전 이미 감리가 진행중인 회사도 과거 위반 사항을 수정한 경우는 2단계 감경 조치하는 내용의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실무지침을 마련한 바 있다. 대한항공에 대한 회계 감리를 벌여온 금융당국이 이날 감리위원회를 열고 대한항공 감리 건을 논의하기로 돼 있어 서둘러 공시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앞으로 사업보고서를 통해 분식을 해소하겠다"는 이례적인 공시 내용도 이를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유사 사례도 줄을 이을 전망이다. 현재 금감원의 감리 방식은 무작위 표본 추출에 따른 감리와 외부기관 등의 고발 등에 따른 혐의기업 감리 등 2가지다.
‘감리 2년 면제’는 과거 분식을 자진 해소한 부분에만 해당되기 때문에 언제라도 감리 대상에 편입될 소지는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금감원은 시행일 이후 감리 대상으로 선정되더라도 감리가 끝나기 전 과거 위반 사항을 수정할 경우 감경 조치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따라서 중대한 위반을 한 경우가 아니라면 감리 도중에 자진 신고를 통해 감경을 받으려는 기업이 잇따를 수 있다. 비록 분식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기아자동차의 경우도 3월초 현대모비스 지분에 대한 평가 방식을 시가법에서 지분법으로 자진 정정해 20일 증권선물위원회에서 ‘주의’라는 경미한 제재를 받는데 그쳤다.
그렇지만 감리 과정에서 위반 사실이 적발되더라도 ‘자진 신고’ 형식을 빌기만 하면 제재를 감경해주는 것에 대해 지나친 봐주기라는 지적도 많아, 향후 유사 사례가 잇따를 경우 적잖은 논란이 일 전망이다.
송영웅기자 herosong@hk.co.kr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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