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전 11시 경기 부천시 원미구 다니엘병원 장례식장 102호실. 14세 때 일본군에 강제연행돼 남태평양 팔라우섬에서 일본군대 위안부 생활을 한 뒤 평생을 한 속에 살다가 19일 지병으로 숨진 강순애(78) 할머니의 빈소에 한 여성이 찾아왔다.
그가 영정 앞에 서서 갑자기 일본말로 "1개월 전 만났을 때만 해도 그렇게 건강하셨는데…"라고 말하자 주변 사람들은 "웬 일본 사람"이라며 경계의 눈빛으로 쳐다봤다.
그러나 이 여성이 쓰보가와 히로코(坪川廣子·62)라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자 "아, 강 할머니 일본 딸"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오면서 경계의 눈빛은 이내 따뜻한 시선으로 변했다.
쓰보가와씨는 강 할머니의 친딸은 아니다. 그러나 살아 생전 친 모녀보다 더 가깝게 지냈다. 한 사람은 피해자이고 다른 한 사람은 가해국의 국민인데도 두 사람의 사랑은 이를 훌쩍 뛰어넘었다. 그래서 강 할머니의 부고를 듣자마자 허겁지겁 한국으로 날아왔다.
두 사람의 인연은 1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쓰보가와씨가 고교 국어교사로 일하던 1992년 일본에서 개최된 전후보상에 관한 국제공청회에 강 할머니가 참석해 고난의 인생사를 증언했다. 쓰보가와씨는 방청석에서 강 할머니의 얘기를 들으면서 부끄러운 마음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일본군의 만행도 만행이지만 이에 대한 사죄와 보상은 하지 않고 오히려 역사 왜곡을 일삼는 자신의 조국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강 할머니에 대한 애틋한 심정을 지울 수 없었던 쓰보가와씨는 이듬해 할머니의 경기 부천시 임대아파트를 찾았다. 서로 말은 안 통했지만 두 손 꼭 잡고 한바탕 웃고 울고 나니 마음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 이후 쓰보가와씨는 1년에 3, 4번씩 강 할머니가 좋아하는 사탕 음료수 과일에 파스와 한약을 한아름씩 사들고 할머니를 방문했다. 강 할머니의 거동이 불편해질수록 쓰보가와씨의 방문도 잦아졌다.
쓰보가와씨는 강 할머니를 생각하면서 도쿄(東京)에 사는 고교교사 10여명과 함께 군 위안부 문제를 연구하는 정기모임을 만들었다. 올해까지 5년간 대표를 맡고 있다. 방학 때는 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숨져간 곳을 방문해 증언을 토대로 현지조사 활동도 펼쳤다. 교과서 왜곡 문제가 불거진 2001년부터는 역사 왜곡에 반대하는 팸플릿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배포하고 있다. 민간단체 주도로 내달 출간 예정인 한·중·일 공동 역사부교재 ‘미래를 여는 역사’ 작성위원으로도 활약했다. 그는 시민운동에 매진하기 위해 2003년 교사까지 그만뒀다.
쓰보가와씨가 도착해 헌화한 직후 강 할머니의 영결식이 시작됐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회원 등이 조사를 한 뒤 쓰보가와씨도 강 할머니를 마지막 보내는 영결사를 했다. "우리가 보내온 지난 세월로 생전의 고통이 보상될 수는 없겠지만 그날들이 아름다웠다고 생각해 주십시오." 원고를 읽어가면서 쓰보가와씨의 목소리는 떨렸고 눈가에는 눈물이 글썽였다. 그리고 마침내 큰 소리로 "엄마 엄마"를 외치며 통곡하자 식장은 이내 눈물바다로 변했다.
화장터인 인천 부평 공설묘지를 거쳐 장지인 충남 천안시 망향의 동산까지 함께 가면서 고인 마지막 가는 길을 지킨 쓰보가와씨는 "재판까지 모두 수포로 돌아간 상황인 만큼 최후의 수단인 입법청원까지 해서라도 반드시 할머니들의 아픔을 풀어 드리겠다"고 다짐했다.
부천=글·사진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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