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에콰도르의 루시오 구티에레스(48·사진) 대통령이 20일 ‘직무태만’을 이유로 집권 2년3개월만에 강제 축출됐다. 사법당국은 구티에레스를 체포해 유혈사태를 촉발시킨 혐의에 대해 조사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에콰도르 의회는 이날 정국안정과 유혈사태 방지를 위해 재적의원 100명 가운데 62명의 찬성으로 구티에레스의 축출을 전격 의결했다. 의회는 긴 시간이 필요한 탄핵절차 대신 헌법상 직무태만을 이유로 한 대통령 파면조항을 이용했다.
정치권의 막후 조정자 역할을 해온 군부도 구티에레스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 브라질 정부는 주 에콰도르 브라질 대사관에 피신해 있는 구티에레스의 망명을 허용했다.
의회 결정 직후 대통령직을 승계한 알프레도 팔라시오 부통령(66)은 취임사에서 "오늘 (구티에레스의) 방자함과 (시민의) 우려는 끝났다"고 밝혔다. 심장병 전문가인 그는 좌파 이념과 친 빈민정책을 선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구티에레스의 축출로 에콰도르는 최근 8년간 현직 대통령 3명이 연속 불명예 퇴진하는 기록을 세웠다. 의회는 1997년 압달라 부카람 전 대통령을 ‘정신적 무능력’을 이유로 강제 축출했다. 이후 집권한 하밀 마워드 전 대통령은 2000년 1월 반정부 시위와 구티에레스 등 청년 장교들의 쿠데타로 중도하차했다. 2003년 1월 원주민과 좌파의 전폭적 지지를 업고 취임한 구티에레스는 긴축에 따른 경제실정과 비리사건으로 지지도가 급락했다.
특히 지난해 11월 시작된 사법파동은 구티에레스 축출의 직접적인 빌미가 됐다. 당시 친야 대법관들이 부패혐의로 자신을 탄핵하려 하자 구티에레스는 위헌논란에도 불구하고 의회를 동원, 대법관 31명 가운데 27명을 면직시켰다. 구티에레스가 친정부 인사로 채워진 대법원을 통해 해외 도피중인 두 전직 대통령의 부패혐의에 면죄부를 준 것도 파문을 확산시켰다.
이달 들어 독단적 국정운영에 반발하는 시위가 전국에서 일주일째 계속되자 구티에레스는 군경에 강경진압을 명령, 최소 2명이 숨지는 유혈사태를 초래했다. 그는 15일 수도 키토에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승부수를 던졌으나 시위가 계속되자 하룻만에 해제하는 해프닝을 벌였다.
이태규기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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