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동북아시아에서 평화와 번영을 위한 균형자 역할을 할 것이라고 노무현 대통령이 다짐하는 사이, 한미연합사가 북한의 내부 동요나 대규모 탈북이 있을 경우 군사행동에 들어간다는 내용의 작전계획 5029-05를 작성했다가 중단한 일이 밝혀졌다. 이렇듯 우리 앞에 드러나는 한반도 위기각본을 보고 있노라면 한반도의 평화로운 생존은 아직도 위태롭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위기 각본의 한 축은, 공식적으로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 전략을 유지하는 주한미군이다. 지금 주한미군은 북한에 대한 공격능력을 강화하는 한편,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계획과 군사변환에 따라 붙박이군에서 동북아는 물론 세계 어디라도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광역신속기동군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지난해 국회동의과정에서 위헌 논란이 있었던 용산기지 이전협정과 연합토지관리계획 개정협정으로, 주한미군은 중국을 마주보는 평택항에 맞닿은 공군기지인 평택미군기지를 크게 넓혀 신속기동군기지로 만들 기반을 마련하였다.
정부는 주한미군이 광역기동군으로 되어도 ‘사전협의’를 통해 한국이 동북아 지역분쟁에 휘말리지 않도록 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불평등 논란이 끊이지 않은 한미관계의 과거와 현재로 보아도, 사전협의를 약속한 1960년 이후 아무 제한 없이 오키나와 미군기지가 미일안보조약 상 ‘극동’의 범위를 넘은 베트남과 이라크 침공의 후방기지와 발진기지로 사용된 일본의 예를 보아도 현실성이 없다. 정부의 방침이, 광역기동군이 되는 주한미군에게 우리 땅을 쓰도록 하는 것이 헌법과 법률에 맞는지 고려하지 않고 광역기동군화 자체는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 더 큰 문제이다.
주한미군이 한국 땅을 사용하는 법률상 근거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인데, 영토주권의 원칙과 조약 3조에 따르면, 주한미군의 행동은 대한민국 영토에 대한 외부의 무력공격이 있을 때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지키기 위해 공격에 대응하는 데 한정된다. 만일 주한미군이 이 임무를 벗어나 미국의 국가이익이나 군사전략에 따라 다른 나라나 지역분쟁에 개입한다면, 조약상 한국으로서는 미군에게 땅을 제공할 근거가 없는 셈이 된다. 그 상대가 북한이든 누구든 주한미군이 선제공격을 감행한다면, ‘침략 행위에 영토를 제공하는 것도 침략’이라고 한 국제연합총회의 침략의 정의 결의에 따라 기지를 제공한 한국도 침략행위에 가담한 것이 된다. 이 경우 국제평화주의를 선언한 헌법 5조가 무너지고 헌법질서가 파괴된다. 상대가 북한이라면 헌법 4조 평화적 통일정책과 국제연합 헌장에 부딪히는 것은 물론이다.
작전계획 5029-05 작성을 중단한다는 보도 후에도, 북한의 안정에 문제가 생기면 미군이 투입될 것이라는 미7함대 사령관의 말이 이어졌다. 미국의 이익과 판단에 따라 한반도가 전쟁과 갈등의 위협에 그대로 드러날 수 있는 이 상태에서, 주한미군의 광역기동군화는 한반도가 다른 나라의 분쟁에 휘말리게 할 위험이 크다. 이 위험이 커질수록, 주한미군의 주둔 근거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주한미군이 이 땅에 계속 주둔하도록 할지, 과연 무엇을 하도록 허용할 지에 대해 헌법과 조약의 기본 정신에 따른 엄밀한 재평가가 시급히 필요하다.
이정희 변호사·민변 미군문제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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