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은 미국에서 차를 타고 가다가 한바탕 웃음을 터뜨린 적이 있었다. 클래식음악 중간중간에 증권뉴스도 전하는 채널을 평소처럼 틀어 놨는데, 늘 고상한 티만 내던 진행자가 그 날 따라 이성을 잃고(?) 이례적인 코멘트를 한 탓이었다.
"지금 이 시각 월스트리트에선 다우와 나스닥 지수가 공히 하락하고 있다는군요."
이렇게 허두를 꺼내고, 여느 때 같으면 시장의 핫이슈와 특이 종목을 말해 주고 본업인 음악으로 돌아갈 즈음, 그는 멈칫했다. 그러더니 아무리 넘겨 받은 원고를 읽는 입장이지만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는 듯이 한 마디 쏘았다. "어제는 경제전망이 안정적(stable)이므로 주가가 오른다더니, 오늘은 또 경제전망이 불안정적(unstable)이므로 내린다 하니, 이거 도대체 뭐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불안정적(unstable)’의 ‘불(un-)’에 잔뜩 힘을 줘 빈정대는 어조가 얼마나 재미있던지 차 안은 온통 웃음바다가 되었다.
종잡을 수 없는 주가를 두고 이처럼 말 바꾸기를 하는 건 세계 공통이다. ‘이번 1,000포인트 돌파는 그 의미가 옛날과는 다르다. 기업실적이 뒷받침되므로 대세는 무조건 상승이다. 단기조정을 저가매수의 기회로 활용하라.’ 얼마 전만 해도 이랬는데 불과 며칠 새에 톤을 바꾸어 ‘글로벌 경기가 부진하다. 실적들이 기대에 못 미친다. 추가하락은 불가피하니 900 포인트 지지여부를 지켜보자’고 한다. 도대체 누굴 믿어야 하나? 여기 그 답이 있다.
L씨는 박사에다 사장에다 집안도 쟁쟁하다. 한때 잘 나가던 모 코스닥 기업의 수장도 그와 인척간이었다. 한번은 집안 모임에서 그 수장이 회사 자랑을 시작했다. 자기 회사의 주가가 오를 수밖에 없는 열 가지 이유를 하나씩 대는 것이었다. 그리고 L씨가 내게 털어놓은 그 뒷얘기는 이랬다. "열 가지 이유 중에 첫 번째를 듣는 순간 나는 마음을 굳혔습니다. 나머지 아홉은 들을 필요도 없다 싶을 정도로 확신이 섰으니까요. 그리고는 양심적으로 며칠 뒤 그 말들이 공시되길 기다렸다가 비로소 그 주식을 샀습니다. 그리고 저희 회사의 자산에도 대량 그 주식을 편입했습니다. 그 코스닥 기업이 부도가 난 건 불과 얼마 뒤였습니다."
주식은 누구 말도 못 믿는다. 부모형제의 말도 못 믿는다. 주가 그 자체만이 진실을 말한다. 오로지 주가, 그 하나만을 보고 듣고 믿어야 한다.
시카고투자자문대표이사 www.chicagof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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