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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교황 베네딕토 16세/ 20여년 바티칸 정책 주도‘준비된 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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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교황 베네딕토 16세/ 20여년 바티칸 정책 주도‘준비된 교황’

입력
2005.04.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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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교황은 누구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0여년 동안 바티칸의 정책을 주도해온 ‘준비된 교황’ 이다. ‘하느님의 로트바일러(충견)’ ‘교황의 오른팔’ 로 불린 새 교황의 사상과 생애는 잘 알려져 있고, 그런 만큼 신비감이 없다. ‘위대한 정치인’이라는 칭호를 얻었던 요한 바오로 2세와는 달리 그는 학자 출신답게 사안마다 구체적이고 분명한 입장을 밝혀 운신의 폭이 좁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 신앙과 교회관 = 베네딕토 16세는 1981년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으로 임명된 뒤 24년간 요한 바오로 2세를 그림자처럼 보필하며 교회 내 보수적 교리 해석을 주도해왔다.

교황 선출을 앞두고 바티칸 내부가보수-진보로 분열하며 교회 변화의 요구가 분출하는데도 그는 강경 보수 입장을 공공연히 강조했다. 유럽의 기독교적 전통을 강조한 저서를 출간했고, 18일 콘클라베 개회일 특별미사를 집전하면서까지 교회의 절대진리를 수호할 것과 요한 바오로 2세의 노선을 답습할 것을 강조했다.

교회 정통 교리의 수호자로서 그는 해방신학, 여성 사제 서품, 사제 결혼, 종교다원주의 등 교회 내 개혁 요구를 일관되게 거부하며 논의의 빗장을 닫아 걸었다. 브라질 해방신학 이론가 레오나르도 보프를 두고 ‘종교적 현실의 전복’이라고 공식 비판했다.

이슬람 국가라는 이유로 터키의 유럽연합(EU) 가입에 공개적으로 반대한 것은 두고두고 말을 낳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19일 사설에서 "이슬람과의 화해가 요구되는 시대에 터키의 EU 가입에 반대한 것은 세계 평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결정"이라고 이 전력을 끄집어 냈다. 낙태, 동성결혼, 안락사 등 민감한 사회윤리적 이슈에 대해서도 요한 바오로 2세와 마찬가지로 보수적이다. 지난해 미국 대선을 앞두고 미국 주교에게 낙태 지지 정치인에게 성찬 의식을 베풀지 말라는 권고문을 보냈다.

그는 작더라도 이데올로기적으로 순수한 교회를 지향해왔다. 유럽 대륙이 본질적으로 기독교의 핵심이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베네딕토’라는 이름을 택한 것도 성향을 읽어낼 힌트다. ‘축복’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이 이름을 통해 금욕의 수도생활을 창시한 성 베네딕토와 1차대전 당시 유럽의 수호자로 헌신했던 베네딕토 15 세(재위기간 1914~1922)를 답습하려 한다는 것이다.

◆ 유년과 청년 = 1927년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에서 경찰관의 아들로 태어난 베네딕토 16세는 39년 예비신학교에 입학하며 성직자로서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청소년기와 맞물린 2차대전 당시의 행적 때문에 나치에 조력했다는 혐의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일찍이 자서전에서 털어놓았듯 그는 41년 나치 청소년 조직인 ‘히틀러 유겐트’에 입단했다. 2년 뒤 방공부대로 징집돼 항공기 엔진을 생산하는 뮌헨의 군수공장에서 일했고, 이후 헝가리 전선에 배치돼 대전차장애물을 건설했으며 이때 유대인 강제 처형을 목격하고 44년 탈영해 전범수용소에 수감돼 있다가 종전을 맞았다.

나치 전력과 관련 그는 저항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공개적으로 해명했으나, 나치 치하의 행적은 요한 바오로 2세와 대비를 이루며 교황이 되는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로 여겨졌다. 그러나 그의 지지자들은 이 시기의 경험 때문에 그가 교회가 진리와 자유를 위해 맞서야 한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설명한다.

◆ 성격 = 사려 깊고 수줍음이 많은 편으로 알려졌다. 파리 디자이너 제복을 입었던 요한 바오로 2세와는 달리 소박하고 덜 활동적이다. 진보적인 가톨릭잡지에서 자신을 공격하는 기사를 보고도 그냥 미소지으며 ‘좋아좋아’하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그가 처음부터 보수 입장에 섰던 것은 아니다. 51년 사제 서품을 받은 뒤 그는 진보적 성향의 신학자로서 명성을 얻었다. 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에서는 신앙의 현대화를 주창하며 교회 개혁을 요구했다. 그러나 60년대 말 유럽의 진보계층을 중심으로 신좌파의 등장을 지켜보며 입장을 선회, 해방신학을 부정하는 등 강경 보수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는 뛰어난 피아니스트로 베토벤 음악을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어, 이탈리아어 등 외국어에도 능통하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 가톨릭계 반응/대체로 환영…중남미선 보수성향 우려

가톨릭계는 교황 베네딕토 16세 선출에 대체로 환영했으나 중남미 등 일부 지역에서는 그의 보수성향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영국 성공회의 최고위 성직자인 로완 윌리엄스 대주교는 20일 "라칭거 추기경은 신과 교회의 본질에 관한 심오한 고찰을 책으로 펴낸 금세기 최고의 기독교 사상가"라며 "베네딕토 16세란 이름을 사용키로 한 것은 그가 금욕적인 신앙생활을 교회에 접목시키기를 원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라칭거 추기경과 친분이 있는 패트릭 켈리 신부는 "매우 현명하고 겸손하며 깊이가 있는 분"이라며 "요한 바오로 2세와는 다른 교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세계 가톨릭 신자의 절반을 차지하는 중남미에서는 기대만큼이나 우려감도 팽배하다. 20여년간 정통 가톨릭의 엄격한 옹호자로 활동해 온 점은 인정하지만, 교황청의 신앙 교리를 담당해온 그의 보수적 신앙관이 중남미의 정치·사회적 현실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까 하는 점에서는 걱정하고 있다. 라칭거 추기경은 과거 급진적 해방신학을 따르는 중남미 사제들을 징계했다.

루벤 드리 부에노스아이레스대 교수는 "라칭거 추기경의 교황 선출은 교조적 자본주의 우파의 승리"라며 "요한 바오로 2세가 갖춘 카리스마와 정치적 기술도 없는 최악의 선택"이라고 혹평했다.

1992년 사제직에서 축출된 브라질의 해방신학자 레오나르도 보프는 "보수적 교리로 중남미 가톨릭 신자를 잃는 중대 실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스라엘 일각에서는 그가 10대때 히틀러 유겐트(나치 청년단)에 가입했던 전력을 들어 다소 경계하는 분위기다. 실반 샬롬 이스라엘 외교부 장관은 이날 성명에서 "새 교황이 어떤 형태든 반 유대주의에 대항하는 강력한 목소리를 내줄 것"을 당부했다.

장학만기자 local@hk.co.kr

■ 풀어야할 과제는/ 낙태·피임·안락사 등 생명윤리 재정립 우선

교리의 수호자인가, 과도기를 넘길 관리자인가. 11억 가톨릭 교인을 이끌 교황 베네딕토 16세 앞에는 해결해야 할 숙제들이 쌓여 있다.

이 가운데에서도 생명 윤리를 재정립하는 것은 핵심 과제다. 바티칸은 콘돔 등 피임기구 사용에서 낙태, 안락사, 줄기세포 연구를 위한 인간배아연구를 모두 금지하는 것은 물론, 이 문제를 공론화하는 것 조차 금기시해왔다. 새 교황은 판도라의 상자의 뚜껑을 더욱 굳게 걸어 잠글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새 교황이 전임자의 노선을 답습하면서도, 새로운 변화의 시대를 준비하는 과도기적 통치를 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그만큼 요한 바오로 2세의 재위 기간 26년 동안 바티칸의 초 보수적인 노선에 대한 반발과 불만은 곳곳에 누적돼 있다. 특히 에이즈가 확산하는 데도 콘돔 사용을 철저히 반대해 온 바티칸의 태도는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중심으로 가톨릭 교인, 비(非)교인을 가리지 않고 숱한 비난을 받아왔다.

생명윤리 쟁점 외에도 이혼문제, 여성의 사제 진출 등을 원천 봉쇄하고 독신주의를 강조하는 바티칸의 완강함 때문에 신부(神父)를 하겠다고 나서는 젊은이 수도 급격히 감소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2003년 교황의 측근인 알폰소 로페스 트루히요 추기경은 "콘돔의 소재인 라텍스 구멍을 통해 에이즈 바이러스가 침투할 수 있다"면서 "콘돔을 믿고 섹스를 즐기는 것은 러시안 룰렛과 같은 짓"이라는 극단적인 주장으로 바티칸 내부에서 조차 논란을 빚었다.

또 바티칸에 쏠려 있는 성직자 임명권 등의 권한을 세계 각 지역의 주교에게 이관하는 등 이른바 ‘바티칸의 민주화 문제’도 현안이다. 신자 감소로 인한 헌금 감소와 각종 비용 증가 때문에 텅 빈 ‘교황청의 지갑’을 어떻게 채울 지도 관심거리다.

대외적으로는 서구 문화와 가톨릭 교회의 가치 충돌 문제 해결과 아시아, 아프리카 등 비 가톨릭권 지역에서의 선교 활동 등이 새 교황의 숙제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베네딕토 16세 어록

▲신앙=교리를 토대로 확고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오늘날 근본주의자로 불린다. 우리는 어떤 것도 확실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고, 자아와 욕망이 최고의 목표가 되는 상대주의의 독재로 다가가고 있다. 2005년 4월18일 콘클라베 특별미사

▲유대교=그리스도가 이스라엘의 메시아이기도 하다는 점을 확신한다. 유대교와 기독교가 언제 어떻게 통합할 것인가는 하느님의 손에 달려 있다. 2000년 저서 ‘하느님과 세계’

▲이슬람=이슬람 세계가 기독교 전통을 지닌 서방의 도덕적 타락과 인간생명 조작을 비난하는 것이 틀린 것은 아니다. 이슬람의 역사도 역시 위대한 영광과 타락의 시기를 겪었다. 2002년 3월

▲여성사제서품=교회가 여성을 사제로 서품할 권리가 없다고 확신하는 것을 일각에서는 유럽헌법과 상충하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2005년 4월

▲동성애=동성애적 성향이 죄악은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는 타고난 도덕적 사악함에 종속되는 강력한 경향을 띠고 있다. 1986년 주교들에게 보낸 편지

▲교회 성추행 스캔들=가톨릭, 특히 미국의 사제들의 죄에 관해 언론이 계속 보도하는 것은 계획적인 공작이라고 확신한다. 2002년 12월

▲사제금욕=결혼과 가족을 포기하는 것은 가장 일반적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을 포기하는 것으로 이해돼야 한다. 1997년 저서 ‘지상의 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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