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날인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구기동 북한산 등산로 입구. 발달장애(자폐증)인들이 운영하는 카페 ‘카드로 만든 집’에 들어서자 딸랑 하고 예쁜 종소리가 울렸다.
30여 평 넓이에 한 쪽에는 벽난로가 있고 바닥에는 자갈이 깔렸다. 180cm가 넘는 헌칠한 종업원 둘이 달려 나와 "어서 오세요" 하고 큰 소리로 자리를 안내했다. 그리고 느리지만 또박또박 "무엇을 드릴까요?" "맛있게 드세요" "고맙습니다" 하더니 어느새 주문한 쌍화차 한 잔이 나왔다.
이 카페가 문을 연 것은 2003년 11월. 믿음복지회 발달장애인지원센터에서 자폐증 청년들이 사회 속으로 직접 들어가 세상도 배우고 자립심도 키우도록 하기 위해 현재의 땅을 구입해 카페를 계획했다. 그리고 일할 장애인도 공모했다. 그렇게 해서 처음 들어온 고경필(24)씨는 벌써 15개월째 일해 온 탓인지 이제 손님을 대하거나 대화할 때 전혀 어색함이 없다. 그러나 "여자 친구 있어요?" "주말에는 어떻게 지내요?"하고 사적인 질문을 이어가자 매우 수줍어하며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지원센터 오유경 과장은 "기본적으로 대인기피증이 있어서 그래요. 질문이 낯설다고 느끼면 적응하는 데 좀 시간이 걸리지요"라고 설명했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훨씬 나아진 것입니다. 처음에는 가르쳐준 대로만 말하려고 했는데 지금은 의사표시를 융통성 있게 확실히 하려고 하지요."
카페 대표격인 임이건(25)씨는 경필씨보다 훨씬 붙임성이 있다. 이웃 주민들과도 스스럼 없이 대화를 나누고 경필씨를 동생처럼 보살펴 준다. 복지센터에서 컴퓨터 사무보조원으로 일했을 정도로 업무 능력도 있다. 입출금 관련 은행 업무도 그의 몫이다. 그는 "요즘은 손님이 줄어 걱정입니다. 그래도 여름에 팥빙수 많이 팔아 성공해서 2호점도 내고 싶어요"라며 포부를 밝혔다.
초창기엔 어려움이 많았다. 장애인지원센터에서는 처음에 주민이나 손님들이 선입견을 가질 것을 우려해 ‘장애인이 운영하는 카페’라는 사실을 감췄다. 그러나 그런 걱정은 서서히 사라졌다. 손님들이 처음엔 직원들 말투가 "이상하다"며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냈지만 카페 문을 나설 때는 "감동 받았다" "일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며 격려를 해 주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카페 입구 게시판에는 손님들이 남긴 수십여 개의 메모와 사진이 빼곡히 붙어 있다. 작년 여름부터는 대학교 관현악단을 초청해 음악회도 열면서 주변 반응도 더 좋아졌다.
오 과장은 "‘카드로 만든 집’이라는 카페 이름은 자폐증 어린이가 자라면서 시련을 극복하는 과정을 담은 미국 영화 제목에서 따왔다"며 "여기도 그 영화처럼 세상을 향해 닫힌 마음을 열고 스스로의 삶을 책임져 가는 터전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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