옌볜 처녀로 분한 문근영(19)이 영화 속에서 처음으로 내 뱉는 말은 ‘아즈바이’(아저씨). 영화 ‘댄서의 순정’(감독 박영훈·제작 컬처캡미디어)은 문근영이 바로 그 아즈바이, 박건형(29)에게 스포츠 댄스를 배우며 사랑을 키워가는 이야기다. 두 배우를 18일 시사회 직전 만났다. "근영아 육학년 해봐" "유강년…" "착하다 해봐" "차가다…(--;;)" "너 말투에 사투리가 남아 있다니까. 으하하." 마치 친남매처럼 장난 치느라 바쁜 두 사람이다.
◆ 문근영이 말하는 문근영
외할머니는 제가 짜증낼 때마다 "얼굴은 마음의 거울이다"라고 말씀하세요. 문근영 커도 예쁠까, 하는 소리 들을 때마다 배우의 얼굴은 스스로 만드는 거라 생각해요. 안성기 선배님요, 온화한 마음이 얼굴에 드러나잖아요. 저도 예쁜 얼굴보다는 마음이 드러나는 얼굴을 갖고 싶어요.
초등학교 3학년 학예회 때 처음 연기를 했어요.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였는데, 공주였냐구요? 히힛, 네 번째 난장이였어요. ("너보다 더 예쁜 애가 있었어?"라는 박건형의 말에) 아이, 그 때는 예쁜 줄 몰랐다니까요. 사람들의 칭찬에 들떠서 연기 시켜 달라고 엄마를 졸랐어요. 엄마는 저를 말리려고 "김대중 선생님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연기학원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는데, 당선되지 않을 거라 생각하셨대요. 김 전 대통령을 만나 본 적은 딱 한 번 있어요. ‘가을동화’의 윤석호 PD님과 같이 간 행사에서였는데, 악수도 했어요. 그런데 저를 연기자로 만든 주인공이라는 걸 아시는 지는 모르겠어요.
엄마가 연기를 반대한 건, 가족사 때문에 제가 상처 받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어요. (문근영의 외할아버지는 최근 별세한 통일운동가 류낙진씨다) 엄마 경험상, 어렵게 공무원 되셨고 직장에서도 많이 힘드셨대요. 저도 상처 받을까봐 말렸대요.
부모님이 광주에서 직장생활 하시니까, 서울에서 활동할 때는 외할머니랑 같이 다녀요. 올해 일흔 넷이신데, 촬영하다 보면 식사도 거르고 힘든데도 할머니는 즐거우신가 봐요. "내가 이렇게 건강한 건 촬영장에서 젊은 사람들의 기운을 많이 받아서야"라고 하세요. (박건형이 "그래서 내가 요즘 기운이 없나…"라고 한마디) 참, 오늘은 엄마가 일하시는 광주사직도서관이 휴관일이라, 엄마도 영화 보러 왔어요. 교장 선생님(광주 국제고)은 모임 나가면, "덩달아 스타 대우 받는다"고 좋아하세요. 그런데, 저희 친척들은 그 사실을 많이 숨겨요. 저한테 누가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세요.
연기하는 거 좋아요. 돈도 많이 버는데, 많이 버니까 기부도 많이 하는 거에요. 아직은 돈이 돈으로 안 보여요. 성적은 많이 떨어졌는데요, 이제 고3이니까 이번 영화를 끝으로 활동은 좀 접고 수능 공부하려구요. 아이, 그런데 무슨 과를 갈 지도 모르겠어요. 그래도 서울에 있는 대학 갔으면 좋겠어요.
‘댄서의 순정’ 보러 오시는 분들은 분명 저에게 기대하는 게 있을 거에요. 교복 입은 발랄한 저를 볼 수 없어 아쉬울 수도 있어요. 그래도 커 가는 문근영을 볼 수 있다는 게 선물이라고 할까요. 사랑할 줄도 아는, 이제 여인의 향기가 문득 문득 느껴져 "문근영이 이렇게 컸구나!" 놀라실 거에요.
◆ 박건형이 말하는 박건형
양복만 매일 입던 사람이 힙합 복장하면 어색하잖아요. 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스타일을 확 바꾼다 해도 어색하지 않은 배우가 되는 게 소원이죠.
뮤지컬 스타라는 말이 주는 무게가 상당한 것 같아요. 뮤지컬을 통해 저를 봤던 사람들은 제가 어디에 나오건 뮤지컬 무대에서의 박건형을 기대하는 것 같아요. (‘토요일 밤의 열기’로 확실한 스타로 자리잡은 그는 지난해 한국 뮤지컬 대상 남자신인상을 수상했다) ‘오빠는 무대에서 더 멋있어요’ ‘TV에서는 오빠의 매력이 죽어요’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뮤지컬만 계속 하라는 소리도 많아요. 그래도 저는 새로운 것을 해보고픈 욕구가 강해요.
제가 지금까지 주로, 연상의 여인들과 짝을 이뤘거든요. 스무 살 넘게 차이 나는 윤석화 선배, 최정원, 배해선 선배…. 처음으로 나이 어린 여배우랑 연기한 거라니까요. 근영이는 가끔 나이보다도 더 어리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래서 편하게 해주려고 배려했죠. ("건형 오빠가 너무 잘 해 줬어요. 전에는 촬영장에 조개탕도 끓여서 가져다 줬어요"라는 문근영의 말에) 조개탕 이야기는 안돼! 이미지 버려…. 1년 전부터 부모님에게서 독립해 혼자 살고 있어 요리 실력이 좀 늘었어요.
저에 대한 기사들 있잖아요. 뮤지컬과 영화를 넘나드는 제2의 조승우다, 또는 톱스타들이 군대 간 틈을 타 뜨고 있다… 이런 기사 보면요. 부담되는데, 그 부담을 버리려고 애써요. 혹, 제 연기가 별로여서 새 작품이 들어오지 않는다 해도 조급하지는 않아요. 작품 없으면 공부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친구 만나고 책 보고 음악 듣고, 완전한 나태함을 즐기다 보면 어느새 성장해 있더라구요.
저는 잘 나가든 못 나가든, 평생 배우 하려구요. 나이 들면, 신뢰감을 주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나 모건 프리먼처럼 서 있기만 해도 무게감이 느껴지는…, 그런 멋진 배우요.
최지향기자 mis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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