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독자에세이/ 결혼 앞둔 맏딸 보니 만감 교차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독자에세이/ 결혼 앞둔 맏딸 보니 만감 교차

입력
2005.04.21 00:00
0 0

오래 전부터 내 친구들이 손주와 노는 재미로 일찍 퇴근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남의 일처럼 느꼈는데, 큰딸아이가 벌써 스물아홉 살이나 됐다. 일에만 몰두하느라 딸아이 결혼에 별로 신경을 쓰지 못했다. 애지중지했던 큰딸이 배필을 만나 제2의 인생을 준비한다고 분주하게 다니는 모습을 보니 아빠로서 희비가 교차한다. 아직도 어린애 같아 막상 시집보내려 하니 밥이라도 제때 해먹을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타고난 미모는 없더라도, 나는 우리 딸이 매화처럼 예스럽고 대나무처럼 꼿꼿하게 자라길 바랐다. 어느 모임에 참석하든지 남들은 흥이 나서 노래도 하고 춤도 추지만, 우리 부부는 밋밋한 성격이라 분위기에 흠뻑 젖어들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우리 아이들 셋 다 어려서부터 조용해서 우리 집에 아이 셋 있다는 것조차 이웃에서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 한편으로 보수적이고 엄격한 부모의 훈육을 잘 따라주어 고맙기는 하지만, 그러다 보니 우리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에 비해 발랄함과 생동감이 좀 부족한 것은 아닌지…. 큰딸이 우리 부부를 가장 많이 닮았다. 어머님이 9년 전 교통사고를 당하신 후 오랜 투병생활을 하고 계신다. 이제는 치매기마저 있어 자식도 잘 알아보시질 못하시지만 정신이 맑아질 때면 큰손녀와 통화하신다. 아기 때부터 할머니의 등에 업혀 자랐던 정(情)이 있어서 할머니의 인자하신 모습과 음성만 들어도 울먹인다. 손녀가 우니까 함께 눈물을 흘리시는 어머니 모습을 보고 가슴이 미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옛 어른들이 말씀하시길 첫딸은 살림 밑천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회사명을 딸 이름으로 따 ‘소이상사’로 했다. 몇 해 전부터 소이가 아빠를 돕는다고 소이상사에서 일을 한다. 큰딸은 워낙 내성적이라 남 앞에 나서기를 꺼려 하고 시키는 일만 잘 하지 남한테 싫은 소릴 들어도 내색 한번 제대로 못한다. 너무나 마음이 여려 거친 세파를 헤쳐 나갈 수 있을지 염려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큰딸을 믿는다. 사랑스럽고 귀할수록 엄하게 키웠기에 우리 큰딸은 정숙한 인격과 덕성을 가진 아내가 되고 어머니가 되어, 부모를 잘 모시고, 이웃을 사귀고, 자녀를 올바로 가르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권순한 한국수입업협회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