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은 우주에서 속도가 가장 빠르다. 1초에 30만㎞ 정도를 날아간다. 1초 동안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이나 돌 수 있는 빠르기다. 지구에서 달을 향해 레이저를 쏘면 약 1.3초 만에 달 표면에 도달한다. 하지만 태양에서 만들어진 빛이 지구에 도착하려면 우주 공간을 약 8분 동안 날아와야 한다. 즉, 우리가 보고 있는 태양은 항상 8분 전의 모습인 셈이다.
같은 원리로, 우리가 밤에 보는 별과 은하는 모두 까마득한 과거의 모습이다. 수십 년~수십 억년 전 머나먼 별이나 은하에서 출발한 빛이 이제서야 지구에 도착해 우리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따라서 천문학자들은 ‘천체망원경’이라는 이름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 빛의 세계로 돌아가 우주 역사를 규명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1초에 30만㎞나 질주하는 빛의 속도는 어떻게 잴 수 있을까. 지동설의 주창자로 잘 알려진 갈릴레이 갈릴레오가 빛의 속도를 재기 위해 사용한 방법은 다소 순진하다. 그는 두 사람에게 덮개가 씌워진 랜턴을 들게 한 후 떨어져 있는 두 언덕 위로 각각 오르게 했다. 한 사람(A)이 덮개를 열어 빛을 보내면 다른 언덕 위에 기다리고 있던 사람(B)이 이 빛을 보는 즉시 자신의 랜턴 덮개를 열어 첫 번째 사람에게 빛의 신호를 돌려 보냈다.
A는 시계를 들고 있다가 자신이 덮개를 연 때부터 B의 랜턴에서 나온 빛을 보는 순간까지 시간을 쟀다. 이 경우 빛은 두 언덕 사이를 왕복했으므로 왕복거리를 시간으로 나누면 빛의 속도가 나온다. 박찬호 선수가 야구공을 던지는 시각과 날아온 공을 포수가 받는 시각, 그리고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알면 야구공의 속도를 계산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원리다.
그러나 갈릴레오의 이 실험은 결국 실패했다. 빛의 왕복에 걸리는 시간이 너무 짧았던 데다가 측정 시간에 실험자들이 랜턴 덮개를 여는 데 걸리는 ‘반응시간’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덴마크 천문학자 뢰머는 1676년 빛의 속도에 관해 최초의 의미있는 계산을 했다. 그는 목성의 위성 중 하나인 ‘이오’가 목성 뒤로 사라지는 현상인 월식이 발생할 때, 이오가 숨어 있는 시간이 지구 공전궤도 상의 위치에 따라 바뀐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지구가 공전궤도 상에서 목성에 가까워지거나 멀어지고 있을 때 이오에서 출발한 빛이 지구에 도착하기까지 가로질러야 하는 길이의 차이를 이용하면 빛의 속도를 계산할 수 있는 것이다.
뢰머는 당시 알려져 있던 지구 공전궤도와 월식 진행시각에 대한 측정 결과를 바탕으로 빛의 속도가 초속 21만2,000㎞ 정도일 것이라고 계산했다. 이는 현재 측정값의 3분의2 정도로 오차가 상당하지만, 당시 천문학적 지식에 비춰 봤을 때는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빛의 속도가 무한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 것 또한 상당한 수확이었다.
뢰머의 계산 이후, 빛의 속도를 지상에서 측정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오늘날 광속 측정값과 비슷한 수치를 얻은 것은 1849년 프랑스 과학자 피조였다. 그는 멀리 떨어져 있는 두 개의 거울 사이에 회전하는 톱니바퀴를 놓고 톱니 사이로 빛이 지나가는 조건을 측정하는 방법으로 초속 31만3,000㎞라는 결과를 얻었다. 오늘날 확인된 빛의 속도와 편차가 거의 없는 정확한 값이다. ‘푸코의 진자’로 지구의 자전을 증명한 프랑스 과학자 푸코도 회전하는 거울을 이용, 광속 측정의 정확도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현재 사용하는 초속 29만9,792.458㎞는 세상에서 가장 정확한 시계인 세슘 원자시계와 크립톤 원자에서 나오는 특정 방출광의 파장을 시간과 길이의 표준으로 삼아, 메탄 분자가 흡수하는 이 빛의 파장과 진동수를 측정해 구한 것이다. 단, 이 값은 빛이 진공 속을 날아갈 때에 한해서다. 빛이 다른 물체를 통과하면 그 속도는 줄어든다. 가령 빛이 유리 속을 지나갈 때의 속도는 진공 중에 비해 3분의 2 정도에 불과하다.
1983년 국제도량형총회에서는 이렇게 얻어진 광속을 바탕으로 길이의 단위인 미터(c)를 재정의했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극저온의 원자들과 레이저를 이용한 특수한 실험기법을 이용, 빛의 속도를 자동차 속도 정도로 늦추거나 심지어 순간적으로 빛을 멈추게 하는 데도 성공했다. 이처럼 빛을 통제하는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 빛을 이용해 정보를 저장하고 처리하는 ‘광(光) 컴퓨터’를 구현하는 것도 멀지 않은 미래에 가능해질 지 모른다.
한림대 전자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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