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불여장성(文不如長城:학문으로는 장성만한 곳이 없다)’ 흥선대원군은 조선 팔도를 평하면서 호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조선 성리학의 6대가 중 한 사람인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이 전남 장성에 사는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청나라 사신들이 조선의 학문을 시험해 보기 위해 시의 대구를 맞추라는 수수께끼를 냈다. 쩔쩔매던 조정의 대신들이 노사에게 물었고, 그는 단박에 명쾌하게 해석해 시를 써 보냈다. 이를 읽어 본 중국 사신과 조정 대신들이 남긴 말이 ‘장안만목 불여장성일목(長安萬目 不如長城一目)’이다. 서울의 수많은 사람들이 장성 고을의 눈 하나 없는 사람보다 못하다는 뜻이다. 노사는 어릴 적 천연두를 앓아 왼쪽 눈을 실명한 장애인이었다.
■ 세종 때 좌의정을 지낸 허조는 구루병을 앓아 등이 굽었고, 17세기의 대학자 조성기는 젊어서 말에서 떨어져 척추장애인이 됐다. 정조 때의 학자이자 시인이었던 장혼은 절름발이였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 화가 최북과 음악가 김복산 백옥 김운란은 모두 시각장애인이었다. 국문학자인 정창권 고려대 초빙교수는 저서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2005 문학동네)에서 "조선시대는 장애인이라도 사회적 활동을 활발하게 펼쳐 고위직에 오르거나 이름 있는 학자, 예술가가 된 사례가 수두룩하다"고 분석했다.
■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조선 후기의 완고한 성리학이 사회를 지배하면서 생긴 현상이다. 시각장애인들의 주된 역할이었던 점복과 독경 같은 일이 유학자들의 비판을 받으면서 체제 바깥으로 밀려났고, 근대 이후 더욱 심해졌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들이 받는 대접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전체의 70~80% 이상이 실업자이고 50% 이상은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다. 장애인이 전체 인구의 10%에 이르는데도 여전히 장애인을 자신과 다른 사람으로 여기는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오늘 25회 장애인의 날을 맞아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눈길을 끄는 행사는 KBS3 라디오가 교육인적자원부와 공동기획한 장애 학생의 학교생활을 다룬 다큐멘터리 ‘우리는 친구, 우리는 희망입니다’가 오전 9시5분 전국 5,540여 초등학교에 동시에 방송돼 411만 어린이들이 함께 듣는 것이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어려서부터의 교육이 중요하다. 우리 모두 마음의 문을 여는 장애인의 날이 됐으면 싶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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