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사진) 일본 총리와 집권 자민당이 정면충돌 일보 직전이다. 고이즈미 총리가 필생의 사명처럼 추진해온 우정(郵政)개혁에 자민당 의원들이 독기를 품고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자민당 총재이기도 한 고이즈미 총리는 지난 4일 우정민영화 법안의 골자를 결정, 자민당에 승인을 요구했다. 현재의 우정공사를 2007년까지 우편, 저축, 보험, 물류 네트워크 등 4개 회사로 분사하고, 이중 저축과 보험업무는 2017년까지 완전 민영화한다는 내용이다.
자민당은 이에 대해 "고이즈미 총리가 당을 무시한 채 멋대로 정부안을 결정했다"고 강력하게 반발했다. 당정 협의가 난항을 겪으며 몇 차례나 연장된 자민당 관련 회의에서도 정부안의 수정 요구가 빗발쳤다.
그러나 고이즈미 총리는 "수정은 없다"며 특유의 강기를 보였다. 한 술 더 떠서 "자민당이 승인하지 않더라도 이달 중 정부안을 의회에 상정하겠다"고 선언해버렸다. 고이즈미 총리 측근들은 "총리는 최악의 경우 내각 해산까지 생각하고 있다"는 말을 흘리고, 당내 반(反)고이즈미파 의원들은 "총리를 자민당 총재에서 파면하겠다"고 폭언할 정도로 사태는 긴박하다.
총리와 집권당이 특정 법안을 둘러싸고 이처럼 격렬한 대결 양상을 보이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전국 2만 4,000여개의 조직과 28만명의 직원이 관련된 우정개혁에는 복잡한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혀있다.
고이즈미 총리는 우정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우며 2001년 자민당 총재와 총리에 당선됐다. 1993년 우정성 장관을 지냈고 99년엔 ‘우정민영화론’이란 책도 썼다. 총리 취임 이후 거의 모든 역량을 우정개혁에 집중해 왔다. 그는 비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우정사업을 민영화 함으로써 일본을 바꿀 수 있다고 강조한다.
우편저금과 간이보험에 들어 있는 돈만 약 350조엔(약 3,306조원)으로 세계 최고의 예금보유고다. 단순한 우체국 개혁이 아니라 이 돈을 민간시장으로 풀어 경제 활성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하는 자민당 의원들은 표면적으로 고이즈미 총리의 독선적인 리더십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 선거에서 ‘자민당 집표 기계’ 역할을 했던 거대 조직을 포기할 수 없다는 속내를 부인하기는 어렵다. 또 ‘포스트 고이즈미’를 둘러싼 복잡한 당내 정치역학에 따라 고이즈미 흠집내기를 시도하는 측면도 있다.
자민당 집행부는 18, 19일 마라톤 회의를 열어 정부안에 대한 6개 항목의 수정안을 확정했다. 이날 회의에서 자민당 의원들은 모든 권한을 집행부에 일임해 정부와 절충키로 합의했다.
그러나 다수 강경파 의원들은 "고이즈미 총리가 법안 상정을 강행하면 부결시켜버리겠다"고 다짐하는 등 물러설 기세를 보이지 않는다. 집권당 내분으로 인한 의회 해산과 총선거 등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도쿄=김철훈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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